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석혜림 May 10. 2020

당신이 쇼핑호스트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텐데

1. 사업을 제안하는 파트너와의 첫 미팅 자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가끔 함께 작업을 하면 어떨까 제안을 받습니다. 스피치와 관련된 강의나 강연을 기획하는 식인데요. 저는 마케팅팀이 아직 따로 없기 때문에 제가 직접 기획사와 함께 미팅을 거쳐서 컨셉을 잡는 식이죠. 이번에도 여러 강사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했다는 모 퍼스널리티 컨설팅 회사와 미팅을 하게 됐습니다.


가로수길의 예쁜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남녀 대표님 두분이 계셨는데요. 첫 인상이 산뜻하여 오늘 미팅 자리가 기대가 됐습니다. 새로운 사업 또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은 이렇게 서로 만나서 긴장을 풀고 서로의 결을 보고 소위 '핏을 보는' 게 필요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두 시간 넘게 미팅을 진행하고 나오면서 첫 인상과는 다르게 '나라면 결코 저렇게 말하지 않겠다'는 안타까움만이 남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시작이 어긋나면 결코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당신이 쇼핑호스트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텐데>


컨설팅 회사 대표가 한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일까요?

바로 시작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법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내용도, 수십억의 가치가 있는 신선한 아이디어도 때와 장소가 있는 법입니다. 본인 인생에서 쇼핑호스트와 일 대 일로 처음 미팅을 하게 된 대표님은 저를 만나자마자 코로나19로 인한 우리나라 경제 시장 분석부터 악재가 이어질거라는 전망,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홈쇼핑 업계에 대한 분석, 쇼핑호스트 시장의 한계, 강의쪽으로 진출하는 방송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까지 쉼없이 늘어놓았습니다. 여느 일간지 못지 않은 분석이었지만

그게 과연 첫 만남, 시작에 어울리는 오프닝이었을까요?


"안녕하세요 고객님! 반갑습니다.

어제 코로나19 확진자가 이태원에서 또 나왔더라구요? 다들 코로나가 끝이다 끝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이겁니다. 지금 뭣모르고 소비하는 사람들은 하반기에는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뭘 먹고 살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고객님은 이번 달에 얼마 버셨어요?

하긴 뭐 그래도 홈쇼핑 보는 사람들은 보니까 이것도 한번 보실래요? 제가 보기엔 이거나 저거나 다 똑같아요. 각 홈쇼핑에서 쇼핑호스트들이 서로 다르다고 자랑하지만 사실 상품은 뻔하거든요. 그래도 제 상품이 좀 나을 거예요."


어떤가요? 사실 이런 오프닝을 하는 쇼핑호스트는 없을 겁니다. 아마도 이렇게 시작을 한다면 보던 고객들도 손사래를 치며 도망갈걸요? 아니면 홈쇼핑에 항의를 하거나요. 아직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사회, 경제, 정치적인 내용에 대해 미래를 재단하는 식으로 말하면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낍니다. 물론 각자마다 생각은 있지요. 하지만 그 내용으로 오프닝을 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위험한 오프닝이니까요.

그리고 처음 만난 사람의 지갑이나 주머니를 대뜸 열어보려고 하지도 않지요.

마지막으로 상대를 혹은 어떤 분야를 논할 때 '다 거기서 거기다' '다를 바 없다' '뻔하다' 는 용어를 쓰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그 분야가 자신의 분야이든 아니면 상대방의 분야이든 또는 그 자리에 관련 종사자가 없다 하더라도 어떤 관계로 접점이 생길지 모르는 사업 파트너와의 첫 만남에서 부정적인 속내를 드러내는 꼴이니까요. '다 뻔하지만' 나는 다르다! 라는 방식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은 분들도 저는 왠만하면 첫 만남에선 다른 방식을 선택하라고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여자는 다 똑같다. 하지만 너는 다르다. 와 같은 맥락인데 어떤가요? 소개팅 자리에서 나오자마자 상대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첫 느낌이 썩 경쾌하진 않을 거 같은데요?

그만큼 시작은 중요하고 오프닝은 신중을 기울여서 상대에게 내보이는 첫 인사니까 좀 더 부드럽게 핏을 보시는 게 좋습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인데 꼭 그렇게까지 오프닝을 신경써야 하나요?'

'어차피 내 생각을 말할 건데 서로 간보는 것보다 아예 처음부터 본론을 이야기해서 결과를 내는 게 서로 좋지 않습니까?' 라고 생각한다면 '배려' 라는 키워드를 잠깐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함께 시작한다는 건 나와 다른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 혼자 하는 일이라면 배려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결국 우리는 혼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 일하는 거죠. 그렇다면 타인에 대한 배려는 말에서도 시작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 날 컨설팅 대표와 결국 같이 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본금도 많고 디자인 회사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웹지원도 막강하고 심지어 자신들은 개개인의 브랜딩까지도 신경써주는 회사, 라고 하셨지만 제가 과감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온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리가 마무리 될 때쯤 대표는 이런 말을 했는데요.


'쇼핑호스트의 시초는 사실 약장수 아니예요? 500원짜리 현혹시켜서 5000원에 팔았던 그 약장수들, 저는 이 사람들도 쇼핑호스트라고 생각해요.'

'다 비슷해보이는 쇼핑호스트로는 경쟁력이 될 수 없죠. 석혜림씨의 차별력은 뭔가요? 장점이 뭐라고 생각해요?'


이런 말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상대의 호감을 끌어내는 쇼핑호스트라면

'쇼핑호스트도 점점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지만 과연 쇼핑호스트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분명 홈쇼핑이 없던 시절에도 각 지역, 동네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건을 기~가 막히게 잘 소개하던 분들은 있었을 거예요? 앞으로 미래의 쇼핑호스트는 또 어떤 방식일까요?'

'많은 회사 중에 저희와 인연이 되어서 참 기쁩니다. 저희 회사는 이런 이런 경쟁력이 있는데요. 저희는 좀 더 석혜림 강사를 알고 싶어요. 석혜림씨는 주로 어떤 부분을 강점으로 생각하시나요?'

와 같은 방식으로 바꿔서 말했을 겁니다.

시작의 말, 천천히 다가가며 서로의 매력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자리에 어울리는 말, 아닐까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