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굴로 배우가 될 수 있을까

by 굴러가유

최근에

내 인생에서 가장 짧은 단발을 했다.

미용실에 갈 때마다 욕심냈던 머리였다.

원하는 스타일 사진을 2-3개 들고가 조심히

내밀면,

"아 고객님은.. 숱도 많고 곱슬이 심하셔서..

이렇게 하면 삼각김밥돼요 ㅜㅜ"

하시며 내 머리를 들었다 놨다 했다.

강력한 아버지 유전자로 어릴적부터 주기적으로 매직을. 해야했는데,

다 합쳐보면 몇 십번 했을거다.



그런데 참 신기한게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나의 노력에 모발이 두손두발 다 들었는지

남들처럼 꽤 차분하고 스트레이트한 머리가 된것이다.

(이게 된다?)


처음으로 머리를 하고 나와 뛸듯 기쁜 콩닥거림을 느꼈다.


배우가

확연히 티가 나는 스타일의 변화를 주는 경우는 주로

배역이 들어와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거나,

지금 이미지가 잘 안팔리는것 같거나,

하도 일이 안풀려서 확 몸과 마음에

새로움을 입히는 경우다.

(뒤에 두 경우는 결국 같은 맥락이다.)

나는 정확히 안팔리고 안풀리는 쪽에 속했고,

그래서 머리를 바꿨다.


다시 하나부터 열까지 프로필과 영상들을

싹 업데이트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이 정도로 만족으러운 머리라면 기꺼이 그러하겠노라,


다시 시작이다! 배우 지망생 이정, 새로운 길 가보자!



호기롭게

인스타를 뒤적거려 원하는 질감의 사진 작가님에게

프로필 예약을 넣고꽤 열심히 다이어트도 했다.

4kg정도 감량 (에게게 할 수 있지만 다이어트를 제대로 처음 하는 나에겐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하고나서 내 짧은 단발이 더 이뻐보였고

프로필 촬영도 자신감 뿜뿜하게 해냈다.



그런데

사진을 고르기 시작하자마자 모든 게 흔들렸다

예쁘게 나왔다 싶은 사진엔 내 표정이 너무 낯설었고

(내 얼굴이 남들 눈에도 이렇게 생겼나?)

자연스러운 사진은 또 뭔가 부족했다.

(임팩트가 부족해..)



분명 거울 속 내 모습은

예전에 비해 확실히 빠지긴 했지만

사진들을 넘기면서 “더 뺐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가질 않았다.


' 이 정도 노력으론 부족했나? '

' 남들 말처럼 간단한 성형시술정도는 해줘야 하는게

배우의 자기관리인가? '


정확히 뭘 원하는지 모르겠는 상태에서

‘뭘 얼마나 어떻게 보정해달라’는 말조차 조심스러웠다.

프로필을 새로 찍을 때 마다

늘 50퍼센트 정도만 만족하는 내 얼굴.

인스타 피드에 올라오는 다른 배우들은 '진짜 배우' 처럼 생겼는데, 왜 난

같은 작가님한테 찍혀도 이렇게 어색할까.


나 조차도 나를 아쉬워하는 배우.

이 얼굴은 어떤 이미지인가?

어떤 배역에 캐스팅 될 수 있을까?

자신의 이미지도 확실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배우라면

누가 나를 배우로 쓰고 싶어할까.



요즘 난
사람들이 “어! 누구 닮았다는 말 안들어봤어요? ”

라고 말해주는 배우 이름들을 다 적어놓는다.


어쩌면 그 얼굴들 사이 어딘가에 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상인지
확신이 없을 때 그 기록이 조금은 나를 붙잡아준다.

데이터들을 모으고 모으다 보면 그 공통점들이 나를 설명하는데 쓰임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건 아니다.


그치만

이 얼굴이 '배우'로 사용되는데 경쟁력이 없는것 같다.

안쓰럽고.. 측은하게 남의 얼굴 보듯 나를 본다.


그렇지만

이 얼굴이 '내 얼굴'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가진 얼굴, 감정, 생각으로
연기를 해나가야 한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거울을 본다.


이 얼굴로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자꾸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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