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구르다 2026, 우수 편
차와 사람과 이야기 29 : 센 리큐 千利休
釜一つあれば茶の湯はなるものを 数の道具を持つは愚な
“솥 하나만 있으면 차는 되는 것인데 그 많은 도구를 가진다니 어리석은 일이다.”
数多くある道具を押しかくし 無きがまねする人も愚な
“수많은 도구를 들이밀거나, 아무것도 없는 척 흉내 내는 사람도 어리석다.”
茶の湯とはただ湯をわかし茶をたてて のむばかりなる事と知るべし
“다도란 차를 끓여 마시는 것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
-「利休百首」 中
여덟 평의 공간, 세 면을 천장까지 둘러싼 찬장에 꽉꽉 들어찬 묵은 차와 다기들, 입구 한 면에 유리로 된 문 옆으로 찬장에도 골동품이 들어찬 공간 안으로 백 년은 묵어 뵈는 나무 차탁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안쪽으로 주인장 한 명 앉을 공간 좌우로 수시로 열리고 닫히는 차 봉지와 잡동사니들이 즐비하고, 맞은편에 세 자리의 의자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비어 있는 것 없는 꽉 찬 공간. 빅토르 타피에는 바로크 양식이 전면의 과도한 장식미를 추구함에 관해 “비어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 표현했는데, 우리네 예전 차실은 이를 능가했다. 단순히 전면 파사드나 벽면의 영역을 넘어 입체적인 공간 자체를 질식할 정도로 가득 채워 넣어 차를 즐기러 들어온 사람은 내가 제대로 숨을 쉴 수나 있을지 두려워해야 했다. 혹자는 이러한 질식적인 구조에 대해 오히려 안락함을 느낀다고도 하지만 차를 혓바닥과 머리로 마시는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편안함보다는 괴기스러움에 등을 돌리곤 했다.
왜 그토록 많은 도구가 필요했을까? 육우는 다기와 다구를 구분했는데, 다기는 차 마실 때 사용하는 그릇, 다구는 차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를 뜻한다. 다기와 다구를 죄다 집어넣어서 그랬던 걸까? 그건 아니다. 그 공간들에는 다구란 한 점도 없었다. 모두가 다기, 뜯지 않은 차 봉지와 뜯을 일 없는 차 봉지로 가득했을 뿐이다. 어떤 선생은 내게 오래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찻집은 전쟁터다. 찻집 주인은 끝없이 도전받아야 한다. 어떤 차를 가졌는지에 따라 평판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투차(鬪茶)의 역사가 천 년을 넘었으니 그 기예의 현장인가 싶기도 하다. 때문일까. 차를 즐기는 보통의 차인들의 차실도 그런 과밀함의 예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요즘 들어 조금 더 자유롭게 차를 즐기고 싶은 이들 덕분에 숨 쉴 구멍이 조금씩 나고 있어 다행이다.
과시욕은 인류의 유구한 역사다. 무로마치 시대 말기 센 리큐가 살았던 당시도 이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 이 문제를 처음부터 걸고넘어진 사람은 그 스승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라타 주코였다. 잇큐로부터 강단 넘치는 차의 정신을 배운 이 스님은 억지로 넓혀 놓은 차실에 억지로 병풍을 쳐 공간을 좁게 썼다. 좁은 공간에는 늘어놓을 값비싼 장식물도 마땅치 않으니 억지로 딱 한 가지만 허용하는 것으로 정했다. 그 안에서 손님과 주인은 서로를 가까이 마주함으로써 어수선하고 늘어놓은 도구의 회랑을 벗어나 서로의 눈빛과 움직임을 주시할 수 있게 되었다. 딱 한 가지의 장식물은 이를 지켜보는 중재자이자 증인이 되었고, 그 원칙 아래서 센 리큐의 스승은 리큐에게 도구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칼은 사무라이의 언어고, 펜과 종이는 작가의 무기다. 차인에게 차 도구는 몸짓이고, 언어고, 무기인 셈이다. 도구는 필수적이되 마치 무사의 칼처럼 손에 맞고 익숙해서 어떤 순간에도 뽑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은 유한하고, 경험은 제한적인 까닭으로 세상 모든 도구를 마치 오랫동안 내 것인 양 다룰 수 없으니 한 가지를 제대로 다룰 수 있으려면 그 도구에 내 유한한 시간을 온전히 바쳐야 할 것이다. 시간을 온전히 바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웃긴 답이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사랑이다. 애정과 관심이 없이 무엇을 참고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아이를 키우면서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내 아이가 아니라면, 내가 시간을 들여 이 아이와 경험을 공유해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애착이 생기지 않고, 아끼는 마음과 내 손을 굳이 들여가며 쓰지 않고서는 세상 그 무엇과도 쉽게 가까워질 수 없다.
센 리큐의 말 대로라면 우리는 차인으로서 평생에 걸쳐 몇 개의 차 도구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당신의 인생에 진정한 사랑이 몇 되지 않듯, 차를 통해 삶에 목적지를 여행하는 우리에게도 차 도구는 그리 많이 필요치 않다. 더 많이 손에 쥐고, 그 촉감을 기억하고, 손을 그릇에 맞춰가며 호흡하는 시간이 한 달, 일 년, 십 년이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다 금이 가면 슬퍼하기도 하고, 떨어지면 이어 붙여 그와의 시간이 무한토록 이어지도록 소망하는 것이 멋진 차인, 멋진 인간이 되는 길이 아닐까 싶다.
2026년 2월 19일,
정 다 인
당신을 보듬다, 소식지 구르다, rollingtea.net
위 그림
Toshi Yoshida (1911-1965), Locus,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