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투게더>를 감상하고
왕가위.
대체 왜들 그렇게 찬양하는지 궁금했다. 지적 허영심에 호들갑 떠는 건 아닌지 의심도 들었다. 호기샘 해소 차 <동사서독>, <중경삼림>, <아비정전>, <화양연화>, <일대종사>까지 총 다섯 편을 내리 본 적이 있다. 쏟아지는 졸음을 꾹 참아가며.
다섯 번째 영화가 끝나고 왕가위 영화를 딱 두 부류로 나눌 수 있게 됐다.
남자 주인공이 머리에 포마드를 발랐느냐, 안 발랐느냐. 포마드를 바른 영화는 여러모로 절제돼 있다. <화양연화>가 그렇다. 산발인 영화는 대체로 정신이 없다. <동사서독>이 그렇다. 둘 다 딱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왕가위 특유의 불친절한 서사 때문이다.
시적인 대사와 찰나의 눈빛 교환이 넘쳐난다. 공들인 티가 역력한 미장센마저 시시각각 변하는 바람에 혼란만 가중시킨다. 결국 캐릭터의 감정 상태를 끊임없이 추론하게 만든다. 남자 주인공이 산발일수록 추론의 영역은 넓어진다. 상영 시간이 100분도 안 되는 <동사서독>이 안겨 준 피로도는 3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의 <아바타>를 능가했다.
추론 자체를 싫어하진 않는다.
한껏 고조시킨 감정을 어떻게 해석할지 오롯이 관객에게 맡기는 영화는 많다. <사랑도 통역이 될까요?> 마지막 장면처럼. 영화 전체를 곱씹게 돼 사유의 풍미를 짙게 만들기도 한다. 허나 왕가위는 너무 많은 부분을 추론에 맡긴다. 대충이라도 정리해 주지 않아 찝찝함만 남을 뿐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란 생각과 함께.
시비 거는 심정으로 <해피 투게더>를 틀었다.
‘이번엔 다를지도 몰라’란 기대는 애당초 없었다. 그런 기대는 <일대종사>까지 네 번이면 족했으니까. 대신 ‘넌 또 얼마나 잘났냐?’란 마음이 컸다. 자연스러운 머리 스타일로 등장한 양조위와 장국영을 보며 “얼씨구”가 절로 튀어나왔다. ‘왕가위와 포마드 간의 상관관계’로 이제는 잊힌 어느 SNS에서 미약한 어그로를 끌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건 기회야… 브런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거야… 넌 할 수 있어!’를 되뇌며.
웬걸, 되려 내가 당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짜증 나면 짜증 난다 등등 대사는 비교적 직설적이었다. 추론의 큰 축이 사라지니 찰나의 눈빛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귀여웠고, 끈적했으며, 애달팠다. 장국영은 교태가 넘쳤고 양조위는 우직했다. “장국영과 양조위는 양(陽)과 음(陰)이다”란 왕가위 감독의 말이 대번에 이해됐다. 결말마저 개운했다. 피곤했지만 견딜만했다. 왕가위 영화를 보며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왕가위 영화는 재즈다. 언뜻 불협화음 같지만 저마다 화음을 맞추고 있다. 다만 어떻게 들을지는 온전히 당신 몫이다.”라고 어느 씨네필이 내게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한 감독의 영화를 여섯 편이나 봤다면 충분히 봤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왕가위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다. 자극적이고 상업성 넘쳐나는 대중 영화를 좋아하는 나와는 맞지 않다. 신작이 나오더라도 볼 생각은 딱히 없다. 그래도 마지막을 <해피 투게더>로 장식해서 다행이다. 불협화음 속 화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기에.
23.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