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만 아련한 갬성 vlog

<애프터썬>을 감상하고

by 롤린스

-실패한 미괄식 전개-

미괄식 전개는 관객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드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전 장면들을 복기하며 ‘그 장면에서 그래서 그랬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며 무심하게 흘려보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곱씹게 만들어야 한다. 잘 만든 미괄식 영화들은 ‘결말과 동시에 영화가 다시 시작된다’란 평을 자주 듣는다. <나이트메어 앨리>가 대표적이다.


다만 뛰어난 미괄식 영화는 손에 꼽는다. 관객의 흥미를 후반부까지 붙들어 놓기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의 연출력이 여기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관객들은 감독이 흩뿌려 놓은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가며 저마다의 결말을 기다린다. 마지막 퍼즐 조각이 공개됐을 때, 관객들은 예상 못 한 결말에 아연실색하거나 마침내 완성된 큰 그림에 감탄하곤 한다. 미괄식 전개가 주로 반전 영화에 쓰이는 이유다.


<애프터썬>은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 관객의 흥미를 붙잡는 장치가 전무한 수준이다. 왠지 불안해 보이는 아빠의 모습을 제외하면 영화는 1시간 넘게 튀르키예에서 유유자적하는 부녀의 단란한 모습만 비추어준다. 딱히 특별한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들의 휴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오죽하면 ‘이러다 갑자기 살인 사건이라도 벌어지나?’ 우려할 정도로 무미건조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란 생각을 1시간 가까이해야 한다.


-홈 비디오만 1시간-

영화 상영 시간이 1시간 10분에 달할 즈음 어른 소피가 등장하며 그나마 영화의 윤곽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곧이어 이 모든 게 ‘현재 소피가 당시 여행기가 담긴 캠코더를 돌려 보며 아빠를 놓아주는 일련의 과정이었다’는 나름의 반전이 등장한다. ‘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홈 비디오만 1시간 넘게 틀어줬나’란 생각이 스쳤다. 기가 찼다. 이내 내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 못한 감독 본인만의 이야기-

<애프터썬>은 감독 본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쉽게도 감독은 본인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끝내 확장시키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결말과 동시에 영화가 다시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복기하고 싶지 않다'가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모든 사진은 앨범 커버가 될 수 있다’의 영상 버전-

윤곽이 잡히기 전까지 뚜렷한 이야기 전개는 없고, 화면은 소위 ‘있어 보이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물놀이를 즐기는 부녀를 멀리서 찍거나, 호텔 풍경을 꽤 길게 보여주는 등 아무 의미 없는 예쁜 영상일 뿐이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모든 사진은 앨범 커버가 될 수 있다’는 밈의 영상 버전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선지 이런 장면들을 다시 곱씹게 만들려는 감독의 술수에 관객 기만이란 감정마저 들었다.


-편집의 미학을 포기한 장편 영화 연출자-

'가족과 나눈 추억이 어떻게 깔끔하게 정리돼 있을 수 있느냐. 곳곳에 산재돼 있지 않느냐'라고 되물을 수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누군가에겐 그저 동네 놀이터지만 나에겐 추억이 서려 있는 공간인 것처럼. 허나 '내 추억인데, 너무 아련한데, 이렇게 먹먹한데, 어떻게 걷어내'란 감상에 도취된 감독은 장편 영화 연출자로서 선보여야 할 편집의 미학을 포기했다. 만약 단편 영화였다면 나 또한 감동의 눈물로 저수지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끝에 극 전체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자신에겐 너무나 의미심장한 장면들을 버리기 아까웠을 것이다.


-vlog 유튜버 하시면 초대박 나실 듯-

그래서 샬롯 웰스 감독에게 감히 권하고 싶다. Vlog 전문 유튜버가 되시라고. 아님 갬성 충만 여행 영상 전문 프로덕션을 차리시라고. <애프터썬>만 한 포트폴리오 영상도 없을 듯하다. ‘할리우드 CG 업체보다 훨씬 싼값에 모십니다’를 기치로 내걸고 <신과 함께>와 <백두산>을 제작한 덱스터 스튜디오 보다 가성비가 높다. 이쪽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클 것 같다. 진심이다.


P.S) 극찬이 자자해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영화를 관람했다. 극찬하신 분들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꾹 참고 봤다. ‘뭐가 있겠지… 뭐가 있겠지…’하며. 시간이 허망하게 흐른 끝에 엔딩 크레딧이 뜨는 순간, 불현듯 아서 C. 클라크의 명언이 떠올랐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살짝 변형해 보고자 한다. ‘충분히 인내한 감정은 폭탄과 구별할 수 없다.’


★: 2.0

#애프터썬


23.03.3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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