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거미'의 의미
- 스포일러 주의 -
“카프카 같아요!”
극중극 <거미집>의 수정 대본을 읽자마자 신미도(전여빈 役)가 내뱉은 감상이다. 이에 김열(송강호 役)은 “너는 아는구나! 역시 유학파야!”라며 환호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라고 받아들였다. 수정된 대본을 읽으며 ‘이해가 안 간다. 앞뒤가 안 맞는다’라며 볼멘소리를 내뱉는 배우들도 뒤바뀐 설정에 당황하는 정도로만 여겼다. 극중극 <거미집>의 결말에 다다라서야 신미도의 감상이 얼추 이해되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소설 <변신> 속 벌레를 두고 저마다의 의미에 꽂힌 독자들 모습이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변신>은 자다 깨 보니 갑작스레 벌레로 변한 한 남성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독후감 숙제건, 대학교 독서 토론 동아리건 걸작으로 추앙받는 <변신>을 다룰 때 가장 먼저 논의하는 주제는 바로 ‘벌레’의 의미다. ‘벌레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정말 벌레로 변한 걸까?’, ‘왜 하필 벌레일까?’ 등을 연이어 토론하게 된다. 이에 대한 정답은 오직 카프카만 알고 있다. 하지만 카프카는 살아생전 ‘벌레’의 의미를 정확하게 밝힌 적이 없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저마다의 해석을 쏟아낸다. ‘벌레’의 의미를 다룬 논문도 수두룩하다. 작품 속 장치를 하나하나 곱씹고 의미를 추론하며 토론하는 문화적 지적 유희의 극단에 <변신>이 있는 셈이다. 100년 넘게 이어진 이 지적 유희는 <변신>을 오늘날 여전히 추앙받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지적 유희는 지적 허영으로 빠지기 쉽다. 카프카의 ‘벌레’를 논하는 내 모습에 반해 나만의 의미를 남들에게 강요하는 순간, 유희는 허영으로 변모한다. 신미도가 “카프카 같아요!”라 한 이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신미도는 <거미집>이 명작인 이유를 단 한 번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네까짓 게 뭘 아냐. 명작의 탄생을 망치지 말라”라며 주변에 으름장만 놓을 뿐이다. 그녀의 배경도 지적 허영을 유발한다. 신미도는 소위 ‘일본 유학파’다. 그러나 ‘일본 어디에서, 어떤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당시 한국보다 월등히 잘 사는 일본에서 수학했다는 이유만으로 ‘역시 유학파는 달라!’라는 시선 속에 살고 있다. 거장 감독의 조카란 사실도 그녀의 권위를 드높인다. 이 모든 게 결합돼 탄생한 본인만의 형용 불가 해석에 그녀는 도취된 것이다.
그렇다면 김열은 왜 카프카스러운 결말로 바꿔야만 걸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이 또한 지적 허영과 연관되어 있다. 우선 재촬영 전 김열의 처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주변 사람들은 김열의 데뷔작을 두고 그의 은사인 신 감독의 자장 아래 놓인 작품이라 평가 절하한다. 그럴 때마다 김열은 100% 본인 작품이라고 격렬하게 항변한다. 세간의 의혹은 알고 보니 사실이었다. 신 감독이 작성한 시나리오를 훔쳐 자신이 쓴 것처럼 행세한 것이다. 어찌 됐든 성공적으로 데뷔했지만 이후 김열 본인이 손수 쓴 시나리오로 만든 작품들은 연이어 실패한다. 점점 삼류 감독으로 여겨지고 있던 참에 해당 결말이 떠오른 것이다.
이처럼 김열은 신 감독과 달리 국밥집에서 마주친 평론가들 말마따나 ‘그저 그런 감독’이다. 이런 그를 지배하는 정서는 콤플렉스다. 어떻게든 신 감독의 자장을 벗어나려 애쓰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신 감독 집 구석방에서 눈칫밥 먹어가며 살고 있고 어딜 가든 다 신 감독과 비교만 한다. 면전에서 조롱하는 평론가들 말에 분개해 “지들이 뭘 안다고 저급하고 난잡한 글로 내 작품을 난도질하냐”라며 구시렁대는 김열의 모습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처연한 발버둥이다.
이런 그에게 카프카스러운 결말만큼 좋은 선택지도 없다. 극중극 <거미집>은 결말 전까진 한낱 치정극에 가깝다. 불륜, 혼외자, 이복남매 등 치정극이 갖춰야 할 온갖 요소가 다 나온다. 그런데 이 치정극의 결말이 좀 난해하다. 거미줄로 난장판이 된 집안 천장에 거미줄로 칭칭 감긴 주요 인물들의 시체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다분히 추상적이다. 해석할 부분이 넘쳐난다. 뭔가 있어 보인다. 평론가들에겐 이만한 만찬도 없다. ‘난도질’ 전문가들에게 지적 허영의 무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김열이 먹물들의 지적 허영을 역이용할 만큼 똑똑한 인물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비열한 인물인 것만은 확실하다. 은사가 눈앞에서 불에 타 죽는데 그의 시나리오를 훔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겨 짧게나마 영화를 누렸다. 카프카스러운 결말은 이 비열한 작자의 생존 본능이 꿈틀댄 결과다. 삼류 감독으로 불릴 판인데 추상적 결말 정도는 충분히 해 볼 만한 배팅이다. 김열은 수정된 대본 앞에서 끊임없이 ‘이건 걸작이야’를 되뇐다. 본인의 배팅에 꽂힌 것이다. 배팅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홀연히 나타난 신 감독의 허상(사실상 김열의 잠재의식)은 믿음을 확신으로 굳혀준다. “너 자신을 믿고 가!”
배팅은 통했다. 시사회에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변신> 속 벌레를 두고 벌어지는 난상토론이 <거미집>에서도 발현돼 본연의 가치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영화인들과 평론가들은 끊임없이 김열에게 거미의 의미, 나아가 결말의 함의를 물을 것이다. 오직 김열만이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변신> 속 벌레의 정확한 의미를 오직 카프카만이 말할 수 있듯이. 하지만 김열은 답하지 않을 것이다.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도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23.10.18
23.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