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by 롤로

아침 먹고 식탁을 너무 열심히 닦은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늘 똑같은 사무실 책상일 텐데 오늘따라 유독 더 더러운 것 같아 하지 않던 책상 정리를 한 탓일까. 어디서 박혔는지 모를 작은 가시가 오른손 검지 손가락 손톱 밑 아주 민감한 부위에 끼어 진영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오전 미팅이 끝나고 문화부 미영 팀장이 족집게를 들고 나타나 가시를 빼주었지만 가시의 끝 부분 혹은 뿌리가 아직 그곳에 남아 있는지 계속해서 따끔거리고 신경이 쓰였다. 가뜩이나 기사가 잘 써지지도 않는 날인데 손가락마저 신경 쓰이니 진영의 마음은 계속해서 날카로워져만 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해서 살펴보았지만 남아 있는 가시의 잔해나 뿌리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분 탓이려니 생각하려 해도 분명 살갗에 꽂힌 가시가 달랑달랑하며 주는 잔잔한 고통이 계속해서 뚜렷하게 느껴지기에 퇴근하고 병원에라도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가시 빼려면 어느 병원을 가야 하나 검색해 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창에 '가시...'를 입력했을 때, 메시지 알림 창에 엄마로부터 온 메시지가 떴다.


"어제 말한 거 알지? 오늘 오후 7시 문래동 카페 올드문래. 안 나가면 엄마 죽어버릴 거다."


'이 아줌마가 미쳤나 진짜 멋대로 약속을 잡으면 어떡해!' 순간 열이 확 달아오른 진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책상을 내리쳤다. 쿵하고 울리는 소리와 함께 노트북 옆에 지저분하게 쌓여 있던 테이크아웃 커피 잔이 쓰러졌고, 옆자리에 앉아 졸고 있던 경제부 후배가 괴고 있던 턱이 손에서 떨어져 나가며 "으아아"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깨버리고 말았다. 고요한 사무실에 별안간 들린 큰 소리에 줄지어 늘어선 수십 개의 책상 가림막 위로 고개들이 올라왔다. 이런 큰 소란을 피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두더지처럼 올라온 머리들이 이리저리 안광을 쏘고 있을 때, 진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요즘 나이로 38과 40살 사이, 즉 86년생의 삶을 살고 있는 진영은 말 그대로 장 씨 집안의 문젯거리였다. 어젯밤 불쑥 나타난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장 씨 집안 아들 딸 중에 결혼을 하지 못한 사람은 몇 대인지 모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저기 부엌 아궁이에서 밥 해 먹던 시절, 천연두가 유행해 결혼을 한 달 앞두고 비명횡사한 장 아무개가 유일하다고 했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는 딸의 오피스텔 번호키를 자기 마음대로 누르고 들어와 내지른 엄마의 한탄에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진영도 지지 않고 내질렀다.


"그럼 내가 두 번째 하면 되겠네!"

"으이그, 이 화상아. 반찬 가지고 온 엄마한테 그게 할 소리냐"

주섬 주섬 반찬을 풀어 냉장고에 채워 넣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약해진 진영도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니, 누가 먹는다고 이렇게 많이 가져와."

"됐고. 사람이나 만나봐."


또 시작이었다. 작년 설날에 진영의 손을 잡고 "우리 장손녀 결혼하는 건 보고 죽어야 되는데"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셨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엄마와 아빠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후 틈만 나면 아는 지인의 아들, 지인의 지인의 아들들을 수소문했고 강력하게 원치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음에도 극구 전화번호나 남자의 사진을 수시로 들이밀었다.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자리를 가졌으나 진영은 가족의 소개 자리라는 부담 때문인지 당최 그 자리가 어색하고 힘들어 이제 다시는 안 나간다고 또 이런 자리 만들면 죽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었다. 충격요법의 효과인지 한동안 소식이 없던 선, 혹은 소개팅 자리 이야기가 또 시작된 것이다.


안 한다고 몇 번이나 엄포를 놓은 뒤 엄마를 억지로 문밖으로 밀쳐내고 진영은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핸드폰을 들고 짧게 지나가는 무의미한 영상들을 뒤적거리다 그도 재미없다는 듯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지런히 일하고 재밌는 것들을 좇다 무언가 벅찬 느낌이 들어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멈칫'했더니 어느새 마흔이었다. 두툼하게 부풀어 오른 식빵처럼 넉넉한 것이 시간인 줄 알았는데 막상 뜯어보니 진영의 시간은 삼각형 모양으로 아주 작게 잘라진 조각케이크 같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조각케이크를 손에 쥔 채, 진영은 무언가 끝맺고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다가올 때마다 계속해서 피하고만 있었다. 기나긴 생각 끝에 문득 엄마한테 안 나간다고 그렇게 엄포를 늘어놓고서도 소개팅에 무슨 옷을 입고 갈지 고민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환멸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뒤척이던 진영은 될 대로 되라지 하며 늦은 시간 잠을 청했다.


진영은 엄마가 멋대로 정한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기사를 다 쓰지 못했다고 약속을 미루자고 해볼까. 아니면 몸이 아프다고 해볼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다며 다음에 보자고 해야 할까. 수많은 생각들을 머릿속에 그러쥔 채 진영은 가까스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시간을 살펴보니 오후 5시. 부장에게 기사를 전송하고 손가락을 살펴보았다. 오전보다는 덜했지만 아직까지 까실거리는 느낌이 남아 있었다. 까슬까슬한 느낌이 드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만지작 대며 노트북 화면 속 '가시 박혔을 때 가는 병원'을 말없이 응시하던 진영은 결심을 굳힌 듯 노트북 전원을 끄고 옷과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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