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작고 소박한 차가 한대 있다. 이제 곧 누적 10만 킬로를 돌파하는 이 차는, 함께 남해의 푸른 바다도 보았고, 강원도의 높은 산과 굽이진 계곡의 길들도 누볐으며, 누군가의 행복한 결혼식과 슬픈 이별의 날도 함께 했다. 첫차이니만큼 애정이 남다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차에 애정을 주게 된 이유는 차 덕분에 넓어진 활동 반경, 곧 나의 먼 곳에의 대한 동경을 차가 쉬이 채워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차를 사고 가장 먼저 구비한 것은 작지만 등과 머리를 받쳐 앉을 수 있는 캠핑 의자였다. 나는 이 의자를 1년 365일 내내 자동차의 트렁크에 싣고 다녔다. 차를 타고 서울에서 제법 먼 곳을 갈 때면 잠시 정차 한 뒤 의자를 펴고 거기에 앉아 산새를 감상하거나 멍하니 물을 바라보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제법 더워진 날씨 탓에 갑자기 시원한 계곡이 생각이 났는데, 마침 일이 없는 주중 하루이기도 했고, 마음이 동해 차를 끌고 연천의 한 계곡으로 향했다. 평일 출근 시간이 지난 도로는 한산했고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가는 길에 김밥 집에 들러 참치 김밥과 멸치 김밥 한 줄씩을 포장했다. 내비게이션이 계곡에서 의자를 펴고 놀만한 자리까지 찾아주진 않기에, 목적지로 설정한 계곡에 도착하면 여기서부터는 내비게이션을 끄고 천천히 물가를 따라 운전하며 의자를 펴고 쉴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꽤 많은 시간을 들여 계곡을 따라 천천히 운전하다 보면 야트막한 웅덩이도 나오고 제법 강한 물살이 있는 곳도 지나친다. 그러다가 의자를 펴고 발을 담그고 책을 읽거나 하늘을 감상할 만한 계곡(머리 위 나뭇가지와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가려주면 금상첨화다.), 그런 곳을 찾으면 나는 차를 갓길에 대고 계곡으로 내려갈 채비를 한다.
캠핑의자와 갈아 신을 슬리퍼, 오면서 사가지고 온 김밥 두 줄 그리고 김밥과 함께 먹기 위해 텀블러에 담아 온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챙기고 계곡으로 내려서면 드디어 나의 즐거운 계곡 나들이가 시작된다. 강렬한 햇살은 짙은 나무 그늘에 가려져 그 뜨거운 열기가 잠시 존재감을 잃는다. 발목까지 잠기는 물가로 가 그 위에 의자를 펴고 앉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은 이곳까지 달려오느라 뜨거워진 몸을 시원하게 식혀준다. 잠시 의자에 앉아 계곡의 물소리, 사그락대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소리와 새소리 같은 것들을 듣는다. 고요한 계곡에서 홀로 그런 소리들을 듣는 시간은, 요즘 같이 듣기 싫은 소리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제법 귀한 시간이다.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이 온다. 가져온 김밥을 하나씩 꺼내 먹으며 배를 채운다. 그리고 짧게나마 책을 읽는다거나, 노래를 듣다 보면 어느덧 시간은 정오를 넘겨 뜨거운 오후로 내달린다. 햇살은 아침보다 더 강렬해지고, 매미의 울음소리가 점차 우렁차게 들리면 문득 누군가의 온기가 그리워진다. 혼자인 시간이 어느 정도가 지나면 자연스레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진다. 그런 마음이 들 때쯤 나는 천천히 계곡을 떠날 준비를 한다.
가지고 온 김밥의 포장지와 쓰레기들을 챙기고 의자에서 흙을 털고 자리를 정리한다. 차에 짐을 모두 옮겨 실은 뒤 나는 다시 한번 계곡으로 내려가 사진을 몇 장 찍어둔다. 괜히 떠나려니 헛헛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서이다. 그렇게 짧은 나들이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생각한다. 오늘의 짧고 작은 순간들의 기억으로 나는 또 몇 날을 살아갈 기운울 얻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