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성
이사 준비를 할 때였다. 아파트 베란다 구석에 작은 창고 속, 그 속에 처박혀 있던 커다란 상자 안에서 파나소닉 CD플레이어를 발견했다. 은색 빛깔의 본체에 검은색 이어폰이 연결되어 있었고, 이어폰에 리모컨이 달려 있는 아주 구식 CD플레이어였다. 오랜만에 만난 구시대의 유물이 신기해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작은 호기심이 일었다.
"작동은 할까?"
바로 전원을 켜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배터리가 방전된 듯했다. 하지만 전원이 켜진다고 해도 집에는 CD가 한 장도 없었다. 핸드폰을 켜고 유튜브나 음악 어플에만 들어가도 전 세계의 노래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니, CD가 없을 법도 했다. CD를 어디서 구하지 하고 생각하며 기기의 뚜껑을 열고 충전을 위해 배터리를 꺼냈다. 납작하고 네모 반듯한 배터리를 보는 순간 멈칫했다. 아무래도 이 CD플레이어로 노래를 듣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납작하고 네모 반듯한 배터리와 충전기를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었다. CD도 인터넷으로 구하면 못 구할 것이 없었지만, 괜한 추억과 감상에 마음이 동해 주말에 시간을 내어 종로에 다녀오기로 했다.
CD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사 때문에 바빠,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나 종로의 '서울레코드'로 향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와중에 습관적으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핸드폰 속 유튜브 뮤직을 눌렀다. 노이즈 캔슬링이 제공하는 탁월한 음향감상 공간 속에 빠져, 종로에 도착하기 전까지 인공지능이 추천해 주는 많은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다.
'서울레코드'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다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아무래도 과거의 것들이 가져다주는 그 포근함이나 추억의 놀라운 보정 능력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런 연유로 이곳에 와 있으니 말이다. 레코드 점에 도착해서도 어떤 CD를 사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익숙한 모습의 CD를 한 장 발견했다.
휘성의 2집 앨범이었다.
놀랍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CD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향했다. 그 시절의 수많은 추억들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어릴 적 내가 파나소닉 CD플레이어를 산 이유가 이 가수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안 되나요'라는 노래로 얼굴을 알린 이 가수가 두 번째로 낸 앨범. 'with me'와 '다시 만난 날'이 수록되어 있었고, 내가 좋아했던 '미인', '말을 해줘'도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작은 방으로 달려가 서랍 속에 고이 잠들어 있던 CD플레이어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달칵" 하고 CD플레이어의 뚜껑을 열고,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케이스 안에 있던 CD를 들어 올렸다. CD플레이어에 CD를 넣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리모컨의 백라이트 불빛이 투박하게 빛을 발하고 CD가 돌아가는 소리가 "위잉"하고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딱딱한 버튼을 눌러 앨범의 두 번째 곡인 '다시 만난 날'을 재생했다.
많이 보고 싶었다는, 하고 싶던 그 말보다
왜 돌아왔냐는 말이, 나도 모르게 먼저 나와
텅 빈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고 휘성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다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갔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가수에 대한 연민과 속절없이 지나간 시절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에, 퍽퍽하게 메말라 야트막해진 볼가에 주룩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애써 웃어 보이려는, 너를 다시 울리고서
우는 널 보고
내 맘도 울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