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법칙

by 롤로

장마의 법칙 같은 것일까. 주말이면 어김없이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창밖으로 바라보며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두툼한 컵 위에 핸드드립 커피 하나를 올려두고 위에 뜨거운 물을 조로록 따라 부었다. 눅눅한 날씨 탓인지 진득하게도 피어오르는 커피 향이 부엌을 넘어 거실까지 타고 흘렀다. 야속하게 내리는 비 탓에 오늘 저녁 한강에서 모이기로 한 약속은 진작 취소가 되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한강 대신 모이기로 한 합정의 작은 피자집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머그컵에 얼음을 한가득 담고 잘 우러나온 커피를 옮긴다. 뜨거운 커피가 얼음을 부수는 소리가 고요한 부엌에 울린다. 시원해진 커피 한잔을 오른손에 그리고 왼손에는 전자책을 들고 소파에 가 몸을 와르르 무너뜨린다.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책을 읽다가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씩 들이켠다. 흥미진진한 책의 내용이 궁금해질 때쯤, 달달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가 자장가가 되어 이내 달콤한 주말의 오침에 빠져들고야 만다.


책 때문일까 어지러운 낮 꿈을 꾸고 나서 개운해진 몸을 일으켜 외출 준비를 한다. 창밖으로 내리는 빗소리가 조금 잠잠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우산을 챙기고, 어딜 가나 시원하게 틀어진 에어컨 덕에 얇은 겉옷도 하나 챙긴다. 차를 가져갈까 생각했지만 홍대나 합정을 갈 때 그것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결국 지하철과 버스 중 고민하다가 버스로 결정한다. 역시 비가 오는 날에는 버스가 제격이다.


운 좋게 빈자리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재생한다. 비가 내려서인지 비와 관련된 노래가 계속해서 재생된다. 인공지능이 골라주는 노래들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 저항 없이 듣는다. 차창 밖으로 맺히는 물방울들이 조금씩 굵어지며 창밖 풍경이 다시 변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고 웅덩이에는 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문득 "오늘 모이기로 한 곳이 어디였더라?"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 다시 한번 핸드폰을 꺼내 확인한다.


무료한 일상에 비와 눈은 축복이라고 했던가. 조금 우울해진 기분에 그것이 정말 축복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래도 비가 전해주는 새로운 풍경은 다채롭다. 짙어진 옷과 건물의 벽, 아스팔트 도로의 농도가 묵직한 느낌을 새롭게 가져다준다. "토독. 토독"하며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와 버스의 바퀴가 물웅덩이를 지나칠 때 "솨아" 하고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도 듣기 좋다. 비가 주는 분위기의 우울함을 이겨낼 명랑함과 밝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것은 축복이 맞는 것 같다.


버스에서 내려 떨어지는 빗방울 속을 걸어 약속장소로 이동한다. 하루 종일 빗속에서 유영하듯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내가 비를 싫어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 장소 앞에서 우산에 묻은 물을 털어내고, 원색 가득 반짝거리는 네온사인 불빛이 가득한 피자집에 들어섰다. 순간 맞은편 테이블에서 왁자지껄 신나는 목소리와 밝은 색깔 가득 넘치는 환한 얼굴로 웃으며 손을 흔드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았다. 순간 나의 하루를 잿빛으로 물들인 비의 환영을 스르륵 빠져나와 그들을 향해 경쾌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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