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거머쥔 우리는

by 롤로

5월은 실로 잔나비의 계절이었다. 나는 그들의 노래를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도, 점심 먹고 잠시 산책하는 중에도,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짧은 시간에도 그리고 늦은 밤 봄바람이 좋아 나선 밤산책에서도 끊임없이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계기는 그들의 콘서트였는데, 나는 염원하던 잔나비의 콘서트를 다녀와 그들의 음악에 대해 상당히 고양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꽤 많은 가수들의 콘서트를 다녀왔음에도 콘서트 이후 이토록 한 가수의 노래에 심취하여 오랫동안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들이 콘서트에서 했던 "이제는 꿈이 아닌 다른 것을 노래하려고 합니다."라는 말, 마치 다음 장을 예고하는 듯한 그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일지도 모르겠다.


잔나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 주변에도 많다. 특히 범기는 우리가 자주 가는 술집인 LP바 '다소유'에서 주구장창 잔나비의 노래만 신청했는데, 늘 시작은 '꿈과 책과 힘과 벽'이었다. "해가 뜨고 다시 지는 것에 연연하였던 나의 작은 방"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고시 공부를 경험했던 범기와 나에게 큰 울림을 주는 노래였다. 쉬이 넘지 못할 어떤 벽에 가로막혀 작은 방에서 침잠했던 경험이 있는 젊은 청춘들이라면 크게 공감할만한 내용의 노래였다. 범기는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 라디오에서 나왔던 '꿈과 책과 힘과 벽'을 듣고 펑펑 울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 당시 범기는 "언제쯤 이 고된 하루하루가 끝이 날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했는데, 결국 그 시절은 끝이 났고 우리는 그 시절 아픈 마음으로 듣던 노래를 안주 삼아 위스키를 한 잔씩 나눠 마시고 있었다.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작은 방에 갇혀 지내는 청춘이 나만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하며 범기는 잔나비의 노래가 자신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고도 했다. 근데 요즘은 이 노래의 다른 부분에 더 공감 간다며, 범기는 끝나가는 신청곡의 끝자락에 올라타 "이 부분이야"하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


유경은 결혼식 신부 입장곡을 잔나비의 노래로 지정할 정도로 그들의 노래를 좋아했다. 그녀의 결혼식 신부 입장을 지켜보고 있을 때 "she is everything to me, 지친 나를 감싸 안아줄 그대, 나를 반겨줄 천사 같은 이름 woo~ she~"하고 잔나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홀을 가득 메운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이 노래가 정말로 유경에게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결혼식 후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유경에게 어째서 'She'를 입장곡으로 선택했는지를 물었다. 유경은 잔나비가 자작곡도 없던 시절 '퀸', '오아시스', '비틀스'의 노래로 메인 가수의 바람잡이를 하던 때부터 그들의 존재를 알았다고 했다. 그런 유경은 우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생각보다 결혼식에 어울리는 사랑 노래가 별로 없어. 엄마는 뭐 이런 노래를 신부 입장곡으로 했냐고 나한테 뭐라고 했다니까." 노래 가사에 '용감한 여전사'가 등장하니 어머님 입장에서는 마음에 드시지 않을 수도 있겠다. 문득 신부입장 때 커다란 노랫소리에 맞추어 아버지를 이끌고 개선장군처럼 성큼성큼 걷던 유경의 모습이 생각 나 살짝 웃음이 났다. "사랑 노래긴 한데, 뭔가 당차고 따뜻함이 넘치는 노래 속 그녀가 마음에 들어, 딱 나 같잖아." 이렇게 말하고 웃는 유경을 보며, 그녀도 알고 그 노래도 아는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청춘의 꿈과 희망과 좌절, 새신부가 걸어갈 사랑 넘치는 당찬 앞날 같은 젊음의 전유물들을, 의미가 넘치는 낱말과 문장으로 가득 담아낸 그들의 노래에 나는 산뜻하고 푸르른 5월의 모든 시간을 바쳤다. 내가 하루 더 어른이 되고나면 이 모든 가사와 멜로디에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아쉬움이, 그 한 달이라는 시간의 건너편에 있었다. 5월의 첫날 '모든 소년 소녀들'이라는 타이틀 곡을 들고 와 그네의 젊은 날과 어린 시절들의 꿈에 안녕을 고하는 그들에게서, 나는 나의 젊은 날의 특별함이었던 술과 사람들,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지새우던 밤들에 안녕을 고하던 단정해진 내 모습을 보았다. 그 때문일까, 되돌릴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아쉬움에 속절없이 빠져나가는 초록을 양손에 힘겹게 거머쥐고, 미련에 미련이 넘치는 5월 한 달을 살았다. 창밖으로 녹음이 가득한 작은 카페에 앉아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전원을 켜고, 이제 어느 날에나 꿈과 희망을 노래할지 몰라 아쉬운 내 마음이 계속해서 그들의 가사를 읊조렸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릴 쓸어 올리고, 꿈으로 얼룩진 바짓단을 털었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릴 쓸어 올리고, 꿈으로 얼룩진 바짓단을 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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