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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Aug 17. 2023

제주의 숲과 오름

제주도 숲과 오름 대한 이야기

어김없이 올해도 제주에 다녀왔다. 휴가철에 제주도를 가는 것은 꽤나 큰 불편함과 고통을 수반하기에 가급적 자제하려고 하였지만, 문득 비어버린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제주행을 택했다. 한국사람들에게 제주도는 참 좋은 휴식처이다. 동남아 어느 외딴섬과 같은 휴양지는 아닐지 몰라도, 깊은 숲과 탁 트인 바다는 그곳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게 해 준다. 


사실 제주는 섬이기에 바다를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난 제주의 숲을 더 좋아한다. 제주의 숲과 오름 그리고 짙은 초록색 나무들의 울창함이 더 좋다. 바다를 왼편에 끼고 달리는 수국 가득한 종달리 해안도로도 좋지만, 신비로울 정도로 길고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걸을 수 있는 사려니 숲길을 더 좋아한다. 진짜 에메랄드 빛으로 물들어 있는 바다와 노을이 아름다운 월정리 해변도 좋지만, 바람이 너울거리며 갈대를 흔드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오르는 사방이 탁 트인 용눈이 오름이 더 좋다. 그리고 푸른빛인 듯 보랏빛인 듯 초록빛인 듯 모호한 색을 가진 비자림의 아름다운 비자나무들을 좋아한다. 

내게 제주는 그런 곳이다. 섬임에도 불구하고 바다 보다 숲이, 해변 보다 오름이 더 매력적인 곳. 한여름 울창한 숲은 그 넉넉한 품에 안기면 어딘가에 묻어 있을지 모를 육지의 고단한 일상과 피곤함 같은 것들을 이내 쓱 훑어가준다. 잠시 그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잠시 그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고단함을 잊게 만든다. 바다가 주는 넓은 시야로 인해 생기는 시원한 마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그 마음과는 다르다. 숲이 내어주는 향기와 은은함은 마치 작은 향초를 피워 몸과 옷에 좋은 향을 입히는 것처럼 숲의 기운으로 내 몸과 마음에 좋은 향을 입히고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사려니숲의 그 질서 정연함과 초록의 색감, 비자림의 오묘하고 짙은 녹색은 그렇게 도시인의 몸과 마음에 묻어 있는 작은 티끌까지도 짙은 초록빛으로 정화시켜 준다.


제주에는 수많은 오름들이 있다. 용눈이 오름, 거문 오름, 금오름, 군산오름, 백약이 오름... 그리고 오름은 오름마다 저마다 생김새와 풍경이 달라 오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게 한다. 산처럼 높지 않아 쉬이 오를 수 있지만 오르고 나면 여느 산 못지않게 아름다운 경치와 탁 트인 시야가 펼쳐진다. 제주의 바람은 그 오름 또한 가만두지 않아 오름을 가득 채운 갈대, 억새 같은 풀들을 일제히 이리로 저리로 흔들어 그 흔들림이 마치 바다와 같게 만든다. 그로 인해 그 오름을 걷는 이로 하여금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착각마저 일게 만든다. 오름에 올라 땀을 식히며 해가 지는 모습을 본다. 탁 트인 시야 속에서 작은 해가 바다 아래로 천천히 사라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이내 나는 육지 사람이 아니요 제주 사람이 되어버린다. 

작은 오름에 올라 제주의 푸른 바다와 짙은 초록의 숲과 들판을 바라보다 붉게 지는 해를 뒤로하며 올해 제주 여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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