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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Aug 14. 2023

제주도 김창열 미술관

한여름 제주도에 계신다면 김창열 미술관을 가보세요

한여름의 제주도는 쉬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지친다는 것이 제주 날씨에 익숙한 제주도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할 것이요. 집에서 충분히 쉴 수 있으니 크게 문제 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제주도는 아무래도 여행지인지라 제주도에 여행을 온 사람이라면 그 더위와 습함에 지친 몸을 쉬이 가누지 못할 수도 있다. 더위에 지쳐 숙소로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내내 바닷물에 들어가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카페에만 죽치고 있는 것은 여행에 있어 큰 손해이리라. 만약 그런 사람들이라면 제주도 한림에 있는 김창열 미술관을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김창열이라는 화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김환기의 그림을 게걸스럽게 탐하던 시기였다. 김환기의 그림을 차례로 찾아보다가 그의 제자인 김창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 화랑에서 그의 '물방울' 그림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이미 워낙 유명한 화가이기에 그의 그림을 잡지나 미디어, 책으로 접해 본 적은 있지만 실제 그의 그림 앞에 서서 그의 그림을 바라봤을 땐, 역시 압도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특히 자세히 그의 그림을 살펴보다 보면 '아, 단순히 물방울을 현실에 가깝게 모사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시간은 흐르고 그의 그림에 대한 감상이 잊혀져 갈 때쯤 제주에 '김창열 미술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으나, 한여름 제주가 나를 자연스럽게 미술관으로 안내했다. 그가 한때 몸을 의탁했던 제주에 지어진 그를 기념하는 미술관. 


그는 물방울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고, 제주도에는 그런 그를 대표하는 미술관이 지어졌다. 


김창열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그는 전쟁을 오롯이 겪은 세대만이 가질 수 있는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 실제로 손으로 살점을 뜯어낸 듯한 느낌의 그림을 봤을 땐, 그가 느꼈을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아픔과 고통을 시각화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그에게 물방울은 우연한 계기로 찾아왔다.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영감을 얻은 그는 물방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검은 바탕에 물방울과 물방울 그림자를 그린 '밤에 일어난 일, 1972'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물방울 화가 되었다. 이후 그는 다양한 콘셉트의 물방울 그림을 그렸으며, 어릴 적 배웠던 천자문과 물방울을 결합하여 '회귀'연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대표하는 미술관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그림이나 작품이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김창열의 그림이 그랬다. 대중적이기도 하고 독특하기도 하며, 물방울을 이용한 다양한 변주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가 단순히 물방울의 사실적인 묘사에 그쳤다면, 이 거대한 미술관은 지루한 물방울 잔치로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화풍 변화와 다양한 시도 덕분에 미술관은 김창열이라는 사람의 일대기로 가득 채워질 수 있었다. 그의 삶의 방식과 과정을 따라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그가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그림 속에 담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아픔과 고통, 회한을 이겨낸 작가는 물방울을 통해 행복했던 처음으로 돌아갔다.


한여름 제주 여행에 시원한 물방울의 추억을 남기고 싶다면, 한림에 있는 김창열 미술관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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