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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Jul 13. 2023

장마

긴장마에 핀 무지개

잔뜩 구름 낀 하늘 위로 무지개가 선명하게 펼쳐진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어디냐고, 사진이 참 아름답고 예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집에서 빨래 널다가 무지개가 떴길래 급하게 찍어서 보낸 거라고 말했다. 친구는 오랜만에 사진으로나마 무지개를 보니 참 좋다고, 무언가 행운을 가져다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덩달아 나의 기분도 좋아졌다.


장마철은 곤욕이다. 내리는 비가 주는 감성은 좋아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집에 있을 때 또는 비가 내리는 분위기에 취해 술잔을 기울일 때뿐이다. 비가 내리기 전까지 물을 잔뜩 머금은 공기가 주는 불쾌함이 싫다. 물을 잔뜩 움켜쥔 공기는 뜨거운 햇살과 만나게 되면 마치 사우나에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하루 종일 옷을 입고 사우나에 앉아 있는 느낌으로 생활하다 보면 이내 걸음걸음과 행동 하나하나가 굼뜨고 축축해져 버린다. 가뜩이나 열이 많은 나는 그런 습한 공기를 만나면 쉬이 지쳐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만다.


마르지 않는 빨래를 걱정하고, 옷장 속 옷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까 걱정하고, 입고 있는 옷에서 꿉꿉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게 만드는 장마철은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를 굉장히 피곤하게 만든다. 그리고 외출할 때마다 우산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우습게도 우산을 챙긴 수고에도 불구하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의도치 않은 실망감마저 갖게 만든다.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에 집중해서 비가 오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괜한 스트레스다. 잔뜩 비에 젖은 신발과 양말을 말리며 그런 계절의 한복판에 내가 지금 서 있음을 실감한다.


며칠째 지루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도 제법 우울해져 이내 시야마저도 잿빛이나 짙은 회색으로 뒤덮여버린다. 바람에 흩날리는 옅은 비가 내리기도 하고, 하천이나 강을 크게 범람시킬 정도로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내리기도 한다. 어떨 때는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마음과 가슴 한편이 뻥 뚫린 수채구멍처럼 시원하게 쓸어내려가는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이내 장마철 특유의 어두운 색감과 음울한 분위기는 감정을 차분히 내려앉게 만든다.


날씨 덕분에 긴 시간 동안 가라앉아 있던 마음에 대한 보답이라도 되는 양 긴 무지개는 선명하게도 피었다. 장마가 가진 특유의 짙고 어두운 색감과는 대조적으로 총천연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무지개는 지루한 장마를 잘 참고 견딘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작은 선물과도 같았다. 잠시 걷힌 구름 속 선명한 푸른 빛깔과 무지개를 바라보며 이내 다가올 무더위와 맑은 날씨에 대한 기대감과 걱정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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