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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Jul 03. 2023

문래 야행(夜行)

문래동 구석구석에서 만취한 이야기(feat. 아니 에르노 '세월')

"작가는 개인의 삶에 역사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역사의 큰 물줄기는 어떻게든 개인의 삶과 일생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네요. 프랑스의 역사와 프랑스 작가의 연대기였지만,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과 우리의 연대기를 비교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하게 되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니 에르노의 '세월'을 읽고 독서모임을 가졌다. 오랜만에 참여한 모임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모임만 하고 끝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우리는 오랜만에 문래동을 샅샅이 뒤져 탈탈 털어내기로 작정하고 문래동 투어를 시작했다.


1. 술술 센터

모임은 문래동 술술 센터에서 했다. 술술 센터는 1층에는 카페, 2층에는 오픈 라운지가 있다. 오픈 라운지는 대관이 가능하여 이곳에서 독서 모임을 진행했다. 그리고 대관 가능한 공간 옆에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책상이 있어서 작업이나 독서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3층은 미팅랩이 있는 데 이곳도 네이버 예약을 통해 무료 대관이 가능하다. 


그렇게 독서모임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가득 안은채 우리는 문래동 투어를 시작했다.


2. 양키스버거앤피자

더운 날씨 탓에 피자나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맥주. 그래서 찾은 곳은 양키스버거앤피자, 문래동에 수많은 양키 식당 중 하나다. 양키 통닭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믿고 먹는 양키라 생각하고 일단 자리에 앉아 주문했다. 햄버거와 피자,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2. 아곤(agon)

다음으로 찾은 곳은 우리의 아지트 문래동 아곤이었다. '불탄 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곤은 실제로 화재로 인해 내부가 검게 그을린 곳이다. 어둑어둑한 분위기에 오래된 가구들이 멋스러운 곳이다. 러시아 맥주가 유명한데 우리는 '라스푸틴'을 마셨다. 오랜만에 찾은 '아곤'에는 새로운 식구 고양이 3마리가 있었고 우리는 한참 동안 고양이들과 술래잡기를 했다.


3. TATD bar

보통이면 아곤에서 끝났을 우리의 대화는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끊이지를 않아 또다시 자리를 옮겼다. 비교적 새로 생긴 바인 TATD에서 위스키를 마셨다. 친구는 최근 글렌모렌지 시그넷에 빠졌다며 그 맛에 대한 감상을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TATD는 아곤과는 다르게 도시적인 이미지의 바다. 넓은 테이블 자리와 작은 자리 몇 개와 바 자리가 있다. 위스키와 칵테일을 좋아한다면 잠시 들렀다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4. 미츠바

TATD에서 끝났어야 했는데, 우린 멈추지 못했다. 이때부턴 세상 모든 것들이 즐겁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자카야 미츠바를 찾았고, 실내에 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밝은 조명 아래 작은 테이블에 서서 마시는 맥주는 우리의 기분을 한껏 고양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리 생맥주 나오면 벌컥벌컥 마시고 집에 가자."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우리의 '문래 야행(夜行)'은 알딸딸한 기분과 흥에 젖은 몸짓으로 길거리와 많은 술집들에서 마신 맥주들과 함께 무언가가 가득 채워진 채로. 가득 채워진 것이 무엇인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해 보지만 그저 지금 기분이 좋으면 그만 아닌가 하고 이내 생각의 끈을 잘라버린다.


"한 개인의 삶에 역사는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그날그날 그저 행복하거나 불행했다."

아니 에르노


오늘 나는 지극히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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