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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Sep 25. 2023

글렌모렌지 오리지널

술에 취해 떠든 이야기


글렌모렌지 오리지널(싱글몰트)

글렌모렌지를 대표하는 제품으로 달콤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향이 혀끝에 오랫동안 맴돌며 버번 오크통을 사용하여 숙성시킨다.


"다음 주에 제주도 간다며,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되니?"

"뭔데요 누나. 감귤 초콜릿이라면 윤덕이가 이미 부탁했으니까 하지 마요."

"야, 누가 요즘 그런 촌스러운 걸 먹냐 그거 말고"

"윤덕이는 없어서 못 먹어요. 뭔데요. 나 일하러 가봐야 해요 빨리 말해요."

"올 때 면세점에서 위스키 한 병만 사다 줘."


소주, 맥주, 막걸리 어떤 술이든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던 청년은 언제부터인가 싸움을 피하기 시작했다. 가령 맥주와의 싸움에서 이겼는지 졌는지 따져보면 대부분의 싸움에선 졌다.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친구와 지인들은 망설임 없이 언제고 맥주의 승리에 손을 들어주었고, 소주와의 싸움에선 판정까지 갈 필요도 없이 늘 소주의 승리였다. 막걸리는 먹으면 속이 안 좋아 링 위에도 오르지 않는다. 


그럼 술이란 것은 이 청년에게 무엇인가 생각해 볼 겨를이 있는데, 이 청년은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단지 술과의 싸움으로 파생되는 인간관계 즉,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런 청년에게 의문이 들었다. 위스키라는 술은 어떤 술이란 말인가. 제주도 다녀오는 동생에게 시켜 사 오라고 할 정도로 맛 좋은 술인 걸까. 의문이 생겼다.


"위스키요? 일단 알았어요. 위스키 이름 문자로 보내놔요."


그녀는 늦은 나이임에도 결혼을 하지 않고 솔로 생활을 즐기고 있다. 운동도 열심이고, 철마다 여행도 열심히 다닌다. 나름 사회에서 인정받는 전문직 종사자인지라 자연스럽게 일도 열심히 한다. 연애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위스키를 하나하나 모으는 취미도 생겼다. 청년이 제주도에 간다고 하니 올 때 위스키를 사다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글렌모렌지 오리지널 1L 이거야. 부탁할게. 사다 주면 회 사준다."

"문래 수산 6월 17일 6시. 회랑 위스키 맞교환식 있습니다."

"접수 완료. 그날 보자. 고마워."'


청년은 면세점 봉투를 건네며 술을 꺼내어 준다.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요. 아니 무슨 술을 1L씩 마셔요."

"으이그, 너나 윤덕이나 촌스러워서 안 되겠다. 위스키는 한병 사면 한 잔씩 두고두고 마시는 거야."

"뭐야. 그럼 회랑 한잔 하게 줘봐요."

"이걸 왜 줘. 술집 가면 이게 한잔에 얼만지 알아?"


청년은 무시하며 술병을 따고 한잔 따라 마신다. 그녀도 딱히 말리는 기색이 없다. 


"오, 맛있네! 근데 목이 타들어가는 거 같다."

"너무 촌스러. 너무너무 촌스러 그냥 소주나 마시자"

"근데 누나는 언제부터 위스키 마셨어요?"

"헤어진 전남친이 위스키를 좋아했잖아. 일식집 하는 사람인데 술이랑 음식 이런 거 많이 알았어. 너도 알지 내가 맛집이랑 술 좋아하는 거. 그래서 그 사람이랑 맛집 많이 다녔거든, 그리고 그 사람이랑 처음으로 위스키도 마셔봤지. 그 사람이 나한테 처음 추천해 준 술이 이거야. 글렌모렌지 오리지널. 싱글몰트 위스키. 너도 앞으로는 위스키 마셔라. 너도 슬슬 그럴 때 됐어. 소주, 맥주 이런 거는 이제 뗄 때가 됐다 그 말이다."

"싱글몰트가 뭐예요? 나 원래 술 많이 안 마셔요. 많이 마실 때 가끔 있지만 그렇다고 것도 뭐 한 달에 한두 번이지 근데 맛있다 이 술, 한잔만 더 줘요."

"미친놈이네! 심부름값으로 회도 사주는데 술까지 주면 적자야."

청년은 무시하고 따라 마신다.

"맛이 깊달까. 그리고 책이랑 영화에서만 보던걸 마시니까 왠지 나도 마피아나 두목이 된 느낌이 난달까."


청년은 술 한잔에 한껏 고양된다. 술을 마시며 사람들을 만나고 왁자지껄 떠들고 쓸데없는 이야기, 쓸데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 보통의 술자리였는데 오늘의 술자리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조금은 낯설었다. 그럼에도 청년은 위스키의 맛과 향과 분위기와 영롱한 색깔에 매료되어 '나도 저거 한 병 사둬야겠다'라고 속으로 다짐하고야 만다. 둘은 곧 취해 이말 저말 마구잡이로 내뱉기 시작했다.


"그래서, 윤덕이 어떻게 할 거예요. 왜 윤덕이 맘 안 받아주냐고요. 누나 운동 나올 때마다 나오는 거 알아요 몰라요."

"비싼 술 얻어먹고 헛소리를 하네."

"불쌍한 덕이."

"야 헛소리 그만하고 위스키 한잔 따라봐라."


그녀는 생각했다. 일식집 그 자식은 술을 참 잘 알았다. 그 자식이 술을 앞에 두고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는 지식들이 그녀를 매료시켰다. 술과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 그리고 술술 나오는 그의 말들이 그녀에겐 위스키보다 달콤하고 참치 대뱃살보다 부드러웠다. 대부분 틀린 말이었단 걸 헤어지고 나서야 알았지만 그땐 이미 일식집 그 자식에게 자신의 자존감을 많이 내어준 뒤였다. 윤덕이는 좋은 아이다. 하지만 윤덕이는 소주와 맥주를 마신다. 소주와 맥주를 마시는 애송이들은 이제 끌리지 않는다.


"너는 소주 맥주 마실 때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해라. 위스키 먹다가 소주 맥주는 맛없어서 못 먹으니까."

"뭔 소리예요. 그냥 분위기랑 상황 봐서 마시는 게 술이지!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한잔 더 줘봐요."

"미친놈이네 진짜!"


결국 청년과 그녀는 위스키 반 병을 마시고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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