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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Mar 14. 2024

너의 색깔은

만나서 반가웠다


"너는 나를 어떻게 기억해?"

"그게 무슨 말이야 어떻게 기억하냐니, 잘? 열심히?"


"아니 그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에서 서로를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떻게 기억하냐니, 잘 기억하면 되는 것 아닌가.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고 있으니 서로 좋은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기억하냐는 그의 물음에 섣불리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너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더라...


"그게 아니면 무슨 의미인데"

"나는 너를 이렇게 기억하거든, 문득 너를 생각하거나 너의 이름을 들었을 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 파란 티셔츠에 나이X로고가 새겨져 있고 고동색 면바지를 입은 모습"

"야 너무 촌스럽잖아. 그리고 기억해 보건대 그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모습 같은데"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 그 이후로도 너는 종종 파란 티셔츠나 파란 남방을 입고 아래는 고동색 바지를 입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너를 떠올리게 되면 파란색과 고동색이 함께 떠오른다고 해야 할까. 반대로 파란색과 고동색을 보면 네가 떠오르기도 하고"

"파란색과 고동색이라니. 촌스러워. 촌스러워."


누군가에게 색깔로 기억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길가에 지나다니는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 고동색 바지를 입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떠오른다고 했다. 지금은 절대 입지 않는 색깔의 옷들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파란색과 고동색을 볼 때면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고, 함께 했던 대학 생활이 생각나기도 해 오랜만에 핸드폰에서 내 이름을 찾아 연락하곤 했다고 했다. 흔히 볼 수 있는 색깔 속에서 나를 기억해 준 친구가 괜히 짠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그럼 나는 너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나는 너의 이름을 듣거나 너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너도 말해봐. 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니?"

"글쎄... 뭐랄까. 너는..."


너는 수줍음이 많았다. 나서는 것을 싫어했고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는 것을 싫어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누군가 너의 이름을 부르거나 하여 사람들이 너를 쳐다보면 너는 얼굴이 새빨개지는 그런 아이였다. 한 번은 교수님께서 출석을 부르다가 너의 이름 한 글자를 틀렸다. 기껏해야 내가 눈치채고 동기들 몇이나 알아챘을 실수에도 너는 얼굴이 붉어졌고,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그 이후로도 너는 주목받거나 무언가 사소한 두근거림이 있거나 하면 종종, 아니 꽤 자주 얼굴을 붉혔다. 추억과 함께 공유한 시간 속에서 너는 아무래도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붉은색"

"뭐?"

"너는 붉은색이야. 나는 너를 붉은색으로 기억하고 있었어."

"맙소사. 설마..."


맙소사를 외치는 너의 얼굴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색으로, 향기로 또는 어떤 소리로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아마 그런 이미지로 치환될 정도로 그와 그녀에게 관심을 많이 가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함께 한 추억과 시간에서 녹아져 나온 색깔과 향기는 어느새 그 세월을 함께한 친구를 대신하는 이미지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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