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 맞다 잠들어버린 이야기
스산하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잊은 듯 분에 넘치는, 어울리지 않게 많은 비가 하루 종일 내리치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떨어지는 비는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후두둑, 후두둑"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둑한 방 침대에 누워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나는 마치 미쳐가는 강아지처럼 몸을 이리저리 뒹굴거리며 팔다리를 아래위로 휘젓고 있었다. 그 모습이 기괴하여 가끔 번개라도 칠 때면 마치 프랑켄슈타인 같기도 하고, 미치광이 박사 같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영화에서 보았던, 인류를 대량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고 야릇한 미소를 짓던 미치광이 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르릉 쾅쾅"소리와 번개가 "번쩍"하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몸을 파닥파닥 뒤집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였다. 팔과 다리에 느껴지는 통증과 머릿속을 뜨겁게 달구며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병균 때문에 나는 한 자세로 5초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몸을 뒤집을 때마다 뚝뚝 땀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손가락은 부들부들 떨렸고, 코에서는 마치 고양이처럼 가르릉 거리는 소리가 숨 쉴 때마다 들려왔다. 인간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나의 몸은 마치 인간의 그것이 아닌 듯싶었다.
그 순간 바람에 날린 돌덩이가 "쨍그랑"하고 창문을 부수고 물과 함께 들이닥쳤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침대에서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나 돌을 집어 다시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창문을 막기 위해 고군 분투했다. 초록색 청테이프로 얼기설기 창문을 엮고 걸레를 가져다가 창틀에 올려두었다. 테이프와 유릿조각 사이로 "휘이이. 휘이이"하는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기괴한 그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고 닭살이 올라왔다. 새어 들어오는 비바람에 방은 한층 더 습하고 눅눅해져 버렸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을 청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은 각성되어 버렸다.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과 쭈뼛 서버린 머리카락과 물을 흠뻑 머금은 스펀지처럼 거칠게 부어오른 얼굴이 창문에 비쳐 스산하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란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구멍 난 창문으로 스며들어온 물줄기를 밟고 쭈욱 미끄러져버린 나는 스프링처럼 솟아오른 뒤 그대로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고꾸라져버렸다. 바닥에 번지는 붉은빛의 물결과 함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때 어디선가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자분. 환자분. 일어나세요. 수액 다 들어갔어요."
"네? 네... 감사합니다..."
꿈이었다. 독감 때문에 찾은 병원에서 수액 맞다가 잠이 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