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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Feb 01. 2024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롭게 또 새롭게

중국 은나라 시대 성왕의 세숫대야에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좌우명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날마다 새롭게 또 새롭게라는 뜻인데, 인간이라면 마땅히 나날이 발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그런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나는 왕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인간이기에 한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 나의 좌우명이던 시절이 있었다. 무엇을 하든 하루 한 가지는 해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즉, 어제의 나보다는 1g의 무게만큼이라도 발전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좌우명이 와닿던 시기가 20대쯤이었으니 그때는 꽤나 열심히 살 때이다. 새로운 것들을 접하면 늘 최선을 다하려고 했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즐거웠던 시절. 때문에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그리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하루하루 조금씩이라도 더 배우고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았더랬다. 그때의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외우고 해내는 것에서 삶의 만족을 얻는 그야말로 왕의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역시 왕의 좌우명이어서인지 필부(匹夫)인 내가 받아들이고 삶의 지침으로 삼기에는 이는 너무나 무거운 구절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평민의 좌우명은 점차 변질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어느 정도 좌우명의 테두리 안에서 바뀌었는데 이를테면 "어제 모르던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면 더 나아진 것이 아니겠는가" 또는 "어제보다 오늘 살이 1g의 무게만큼이나 늘 정도로 즐겁게 마시거나 먹었다면 더 나은 인간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하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여행을 다닌다거나, 새롭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닌다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까지 좌우명의 테투리 안에 포함시켜버렸다. 그런 자기 합리화의 길에서 만난 여행지와 맛있는 음식과 새로운 사람은 나름 나를 충만하게 만들어 주었기에 훌륭한 좌우명의 변용이라고까지 생각하며 만족하고 살았다. 하지만 실로 평범한 사람이었던 나에겐 그것도 부족했는지 드디어 그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이젠 "아니 애초에 어제보다 나이를 하루 더 먹으니까 가만있어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 아닌가!" 하는 자기 합리화 최종 단계에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그렇다. 무언가를 새로 배우거나 열심히 습득하는 것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은 그냥 바닥에 누워서 티비를 본다거나 노래를 듣는 것조차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다. 그 좌우명의 테두리 안에서 한참을 벗어나 버린 상황이지만 거리낌이 없다. 먹고 마시고 놀고 점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는데 위기의식조차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말 그대로 나의 세숫대야는 숯물로 새까맣게 혼탁해져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 그리고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아무래도 새해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새해는 또 왔고 나는 작년의 내가 아니어야 함이 여실하게 실감이 나는 이때. 사라져 가는 시간만큼 무언가 쌓이는 삶이 되어야 할 텐데 혼탁해진 나의 세숫대야를 바라볼 때마다 조금씩 쌓아 올린 작은 성마저 스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으레 하는 새해 다짐이 부끄러운 나이지만 올해만큼은 다짐에 어떤 뼈를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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