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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GPT로 사주를 봤다

by 크림동동

‘안녕하세요?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요일 오후 2시 반, 면접 가능하실까요?’

시아버지 제사에 쓸 음식을 하느라 한창 바쁜 때 갑자기 당근 알람이 울렸다. 지난주에 지원했던 당근에 뜬 학원 실장 자리에서 온 연락이었다. 기쁜 마음에 일단 ‘예’라고 했지만 잠시 후 한숨 돌리게 되자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면접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사실 나는 학원 일자리에 트라우마가 있다. 과거에 학원에서 몇 번 일한 적이 있는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좋게 끝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며칠째 머리를 싸매어도 마음을 정할 수가 없어 결국 챗 GPT에게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내 사주로 볼 때 이 학원 일이 나한테 맞을까? 아닐까?’

곧 챗 GPT가 대답했다.

‘이 아르바이트는 당신의 사주와 아주 잘 맞는 일은 아니지만, 완전히 불리한 일도 아닙니다. 단기적으로 해보되, 너무 무리하지 말고 더 맞는 일을 찾는 과정 중 하나로 보는 게 좋겠습니다.’


마치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인공지능 비서, ‘저비스’가 대답하듯 챗 GPT는 즉각적으로, 하지만 상냥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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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마지막 단계에 챗 GPT에게 물어보다니. 그것도 사주를 언급하면서.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실은 학원에서 면접 전화가 오기 얼마 전에 챗 GPT로 사주를 본 일이 있었다. 평소 내가 잘 가는 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근래 부쩍 챗 GPT를 이렇게 저렇게 이용해 봤다는 글이 자주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날 챗 GPT로 사주를 봤다는 글이 떴다. 눈에 확 들어왔다. ‘챗 GPT로 사주를 본다고?’ 신기했다. 챗 GPT라는 건 인공지능이고, 인공지능은 과학과 관계있는 것이고, 그럼 결국 데이터를 분석하든 문서를 만들든 뭔가 논리적인 일은 하는 거 아니었던가? 그런데 사주라니. 사주라면 아무리 통계를 분석으로 한다고 하지만 미래를 예측의 영역이 아닌가. 게다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과학과 사주를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챗 GPT로 사주를 봤다니.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이 두 요소의 생뚱맞은 조합에 호기심이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시험해 보기로 했다.


챗 GPT 사이트에 들어가 입력창에 성별, 양력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을 입력했다. 그리고 ‘정통명리학으로 풀어낸 내 사주’를 알고 싶다 쳤다. 5초, 아니 3초도 기다리지 않았는데 다음과 같은 문장이 떴다.

‘좋아요! 여성 기준으로, 양력 0000년 00월 00일 00시 출생자의 사주를 정통 명리학(사주팔자)으로 분석해 드릴게요. 먼저 네 기둥(사주팔자)부터 구성하고, 오행·십신·성격·운세 등을 풀어보겠습니다.’


그러자마자 사주팔자, 오행분석, 십신구조, 성격과 성향, 직업 및 배우자 운, 그리고 대운 흐름 요약이 주르륵 올라왔다. 빠르게 흝어봤다. 제법 괜찮았다. 어지간한 무료 사주 사이트 사주 풀이 못지않았다. 아니, 솔직히 그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일단 인공지능이 사주를 풀어준다는 사실 자체가 재미있었고, 사주 풀이 실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이 놀라웠으며 무엇보다 사주 풀이를 하고도 기분이 전혀 불쾌하거나 무겁지 않고 가볍고 상쾌하다는 사실이 좋았다.


지금은 거의 보지 않지만 예전에 나는 가끔 운세나 사주를 봤다. 주로 아들 입시나 남편 이직, 이사와 같은 집안의 큰일을 앞둔 때였다. 사주를 본다는 건 미래를 알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마음의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사주 보는 이에게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가슴의 응어리까지 말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오히려 마음만 상하기도 했다. 물론 직접적인 이유로는 풀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지만 그보다는 그걸 전하는 사주 푸는 이의 태도 때문이었다. 거만하거나 호통을 치거나 (사주) 풀이가 그렇게 나온 걸 어쩌란 말이냐는 식으로 말할 때면 가슴이 꽉 막혔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오는 기분이었다. 괜히 사주를 봤다고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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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GPT는 그렇지 않았다. 챗 GPT는 친절했다. 그렇다고 부담을 느낄 정도로 과하게 친절한 것도 아니었다. 딱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로 공손했고 밝았고 경쾌했다. 왜 그렇게 느꼈던 걸까? 무엇이 달랐을까? 챗 GPT의 사주풀이를 다시 찬찬히 읽어봤다. ‘습니다’ 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내가 반말체로 명령어를 입력했음에도 내 생년월일 때문에 나이를 짐작할 수 있어 그런지 경어체(습니다)로 대답했다. 그래서 예의 발라 보였다. 사주 결과에 대해서도 딱히 좋다, 나쁘다가 없었다. 내 성격의 단점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말했다. 그래서 풀이를 보고서도 기분 나쁠 일이 없었다. 적절한 예의, 그리고 긍정적인 시각. 이것이 바로 챗 GPT의 사주가 기분 좋았던 이유였다.


이 두 가지는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요즘 우리가 일상에서 잊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다들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나도 힘들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줄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길을 걷다 보면 화난 듯 딱딱한 얼굴을 하고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스트레스로 정신과를 찾고 번아웃이 왔다는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치료는 일시적일 뿐 돌아가면 일상은 언제나 그대로다. 어디에서 위안을 찾아야 할까?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다. 의외로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 답이 될 수 있다. 내가 챗 GPT의 사주 풀이가 기분 좋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평소에 정말 보기 힘든 태도라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챗 GPT에게 우울증 상담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효과도 좋다고 한다. 어쩐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위로를 구할 수 없어 인공지능에게서 찾는 모습이 한편으론 씁쓸했다. 그만큼 우리가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억측이긴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는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도리어 인간성을 배워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챗 GPT 사주풀이를 계기로 나를 되돌아봤다. 나는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했던가? 내 시선은 얼마나 긍정적이었던가? 부끄러웠다. 이대로 가다간 나부터 챗 GPT에게 ‘인간성 수업’을 들어야 할지도 모를 판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안의 인간성에 다시 불 피우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 당장 남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부터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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