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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나들이 1

북수동 성당

by 크림동동

코로나가 유행이다. 어디서 어떻게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지난주 월요일 아침 눈을 뜨니 근육통에 두통에 목도 아프고... 그런데 감이란 게 있다. 이건 보통의 감기 몸살이 아니다! 그래도 점심때까진 참아보다 결국 야국에서 검진 키트를 사다 검사해 봤다. 결론은 코로나 확진!!


요즘은 예전처럼 코로나라고 따로 격리하고 하지는 않는다지만 양심상 마스크를 쓰고 일주일을 살았다. 사실 초반에는 몸도 안 좋아서 다니려야 다닐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핏속에 역마살이 흐르는 사람이 코로나로 일주일간 칩거 생활을 했더니 코로나가 아니라 급성 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할 지경이 되었다. 하필 지난주엔 날씨도 계속 비에다가 기온도 내려가 우울 모드를 더했다. 무엇보다 햇볕과 바람, 나들이가 절실했다. 다행히 일요일은 날씨가 맑았다. 어딜 갈까 하다가 아직 멀리 가긴 뭐해서 가까운 수원 화성이라도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처음엔 수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내심 가고 싶었던 곳은 시외 아울렛이었다. 남편이 트레킹화가 필요하다고도 해서 아예 멀리 드라이브 겸 나가 쇼핑하며 스트레스도 풀고 넓고 고급진 식당에서 맛있는 것도 좀 먹고,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나간다 하니 남편은 아울렛은 싫은 눈치였다. 할 수 없이 이곳 저것 다른 갈만한 장소를 읊는 와중에 우연히 나온 '수원 화성'이란 이름이 나오자 남편이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요즘 한참 넷플릭스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 꽂혀 있는 남편은 '수원 화성, 좋다'며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수원 화성?


내가 먼저 입에 담긴 했지만 나는 사실 수원 화성이 좀 지겨웠다. 행리단길, 화성 행궁은 이미 몇 차례 다녀온 터였다. 조금이지만 장안문까지 화성 성곽길도 걸어본 적이 있었다. 통닭거리에서 닭도 뜯었고... 내 생각에 그곳에서 할 건 다했다. 또 거길 가서 뭘 하자는 걸까? 하지만 이미 가기로 했으니, 게다가 내가 말을 꺼낼 수니 할 수 없었다. 배우자의 의사도 중요하고 그동안 내가 징징거린 걸 받아준 공도 있는 데다, 솔직히 행선지를 다시 정하는 것도 사실 일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검색, 검색, 검색... 그러다가 눈에 띈 것이 '북수동 성당'이었다. 이곳은 '수원화성성지'였는데 9월은 순교자성월이기도 해서 천주교 신자인 우리 부부에게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을 듯했다. 장소도 마침 행궁 바로 앞. 이 정도면 주일 미사도 겸하고 9월 성월 기념 순례도 되고, 성지 보고 나오면서 성곽 길도 좀 걷고 수원 왕갈비탕도 한 그릇씩 먹고 하면 하루 코스로 딱일 것 같았다. 오케이! 수원 화성, 너로 정했어!



북수 성당 위치는 앞서 말한 대로 수원 행궁 바로 앞에 있다. 성당에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성당 건물 형태가 좀 특이한데 흔히 보는 고딕식이 아니라 주교님의 모자를 본뜬 형태이다. 앞에서 보면 그렇고 위에서 보면 방주 형태라고 한다. 정문 위에는 옛 지도가 고풍스럽게 붙어 있고 입구 꼭대기에는 대천사 미카엘이 창을 악마를 찌르고 있다.


'조선 후기에 서울 이남 경기, 충청권의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와 처형하던 장소에 '뽈리'(한국이름 심응영)라는 프랑스 신부님이 고딕식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한 5명의 천주교 성인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으며 그 외에도 '하느님의 종'(천주교에서 성인을 나누는 등급) 17분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이상은 내가 성지해설사님께 들은 내용을 대충 요약한 것이다. 안내서에 따른 정확한 설명으로는 '조선 후기, 수원유수부의 토포청(중영)이 있었던 곳으로 병인박해 때 순교기록에 남겨진 80여분 외에도 무명의 많은 분들이 순교하신 장소'이다. 1923년 수원 최초의 본당이 설립되었다.

KakaoTalk_20250922_115623836.jpg 정면에서 본 본당 건물. 아침 해가 뒤에 후광처럼 비쳐 십자가가 빛이 나는 듯하다.
KakaoTalk_20250922_115623836_01.jpg 성당 안뜰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상

성당 건물 이외에 맞은편에 오래된 석조건물이 있다. '소화초등학교'라는, 뽈리 신부님이 세운 학교라고 하는데 현재 학교는 광교로 이전했고 건축물만 남아 '뽈리화랑'이라는 갤러리로 이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세워진 건물들에서 볼 수 있는 돌과 나무, 그리고 세로로 긴 창문은 밝은 가을 햇살을 받아 보기에도 따뜻한 분위기를 풍겼다. 내부 교실은 전시관이지만 바닥과 천장 등은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긴 복도, 나무로 된 바닥, 오래된 창틀과 나무 계단 등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라면 향수를 느낄만한 구조물이다.

KakaoTalk_20250922_115623836_04.jpg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는 옛 교실. 나무로 바닥과 천장의 목재와 돌이 따뜻한 느낌을 준다.
KakaoTalk_20250922_115623836_03.jpg 전시실 창을 통해 보는 성당 본관

남편이 미사를 보는 동안(나는 이미 출발하기 전 새벽 미사를 다녀온 차였다) 나는 천천히 화랑을 둘러봤다. 사람 없이 조용한 오래된 건물은 그 자체로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KakaoTalk_20250922_115623836_02.jpg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 바닥의 긴 복도. 향수를 자극한다.
KakaoTalk_20250922_115623836_05.jpg 그 시절의 작고 낮은 나무 의자

비단 '뽈리화랑'뿐만이 아니라 성지 전체가 나지막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풍겨 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서울에서 1시간 남짓 왔을 뿐, 게다가 수원은 큰 도시인데도 그 속에서 이런 시골 같은 정취를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도 한번 둘러보기를 권한다. 천주교 신자라면 성당 사무실 옆에 비치된 안내지에 스탬프를 찍는 걸 잊지 말자. 좋은 기념이 될 것이다.

KakaoTalk_20250922_115623836_15.jpg 안내문에 찍은 기념 스탬프

더 오래 있고 싶었지만 시간이 슬슬 점심때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날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성곽길을 걷기 위해 성지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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