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트가 있는 성묘상
연휴 첫날, 온 가족이 다 함께 성묘를 다녀왔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가 가가로는 두 번째 성묘다. 물론 남편, 특히 막내 시동생은 나보다 더 자주 간다. 나는 명색이 맏며느리이자 외며느리라지만 정작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이번 성묘길만 해도 음식은 시어머니가 다 준비하셨다. 평소 묘소를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은 막내 시동생이다. 그렇다고 이번 성묘에 덜렁 몸만 간 건 아니다. 나는 사과 타르트를 하나 구워 가져갔다. 살아생전 빵을 즐기시던 아버님을 생각해서다.
아버님은 시댁 식구 중 유일한 나의 '빵동지'셨다. 건강염려증 수준으로 건강에 집착하는 시댁 식구들이라 내가 빵이나 케이크를 사 가면 손사래부터 치곤 했지만 오직 아버님만은 그걸 반기셨다. 신기하게 아버님은 그렇게 빵과 초콜릿을 드셔도 평생 살이 찌거나 배가 나오는 법이 없었다. 복 받은 체질이었고 부러운 위장이었다. 그러던 아버님이 어느 날 그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아무도 몰랐다. 식구들 모두 충격이었다. 역시 사람 일이란 모르나 보다. 아버님이 가신 이후 기일과 생신 때마다 나는 빵을 준비한다. 식구들 아무도 거기에 대해 뭐라 하지 않는다. 내가 가져가는 빵은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이다. 파는 제품에 비해 많이 서툴고 맛도 덜하겠지만 아버님은 이쪽을 더 좋아하시리라 믿는다. 아니, 혹시 실제로는 파는 제품의 고급진 맛을 더 원하시는 걸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죄송하게도 아버님께는 이제 선택권이 없다.
성묘 가는 길은 많이 막혔다. 긴 연휴에 해외여행 가는 사람이 많다더니 성묘 가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었다. 혹은 성묘부터 후딱 해치우고 여행을 가려는 걸 수도 있었다. 여하튼 성묘 차량이 몰리는 시간으로 약속 시간을 정한 덕에 예상보다 늦게 묘소에 도착했다. 일찌감치 도착한 시댁의 작은 아버지네 식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다행히 잠시 그쳤다.
현대적인 상차림이랄까, 옛 어르신이 본다면 파격이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과 타르트를 중앙에 놓고 과일과 전, 떡, 북어포를 양쪽에 놓으니 성묘 상차림이라기보다는 소풍 나와 도시락을 펼쳐둔 것 같았다. 가운데 사과 타르트의 존재감이 워낙 큰 탓이었다. 상차림처럼 성묘 예식 자체도 격식 없었다. 시동생이 천주교이신 시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오신 ‘연도 기도문’(천주교에서 장례가 나거나 제례 때 읽는 기도문)을 식구들에게 주욱 나누어 준 후 다 함께 낭송했다. 작은아버지네는 교회를 다닌다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기도가 끝나자 작은 아버지를 시작으로 남편, 시동생, 남편의 사촌 동생, 이렇게 남자들이 한 명씩 나서서 술잔을 상 위에 세 번 돌린 후 묘 옆에 뿌렸다. 그 후엔 식구들이 한 명씩 나와 시아버님께 술을 올렸다. 성묘 자체가 자주 있는 일이 아니고 엄격하게 예법을 따르는 것도 아니어서 다들 어색하게 술잔을 든 팔만 주춤주춤 돌리다가 들어갔다. 그걸 보고 있자니 어딘지 모르게 답답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는 술잔을 받은 다음 입을 열었다.
“아버님, 제가 사과 타르트 구워 왔어요. 많이 드세요.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고요.”
다들 웃었다. 어색하던 공기가 사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다들 나와서 한 마디씩 아버님께 말 한 다미씩 하며 술을 뿌렸다. 그러자 이미 순서가 지나간 다른 이들도 한 번 더 하겠다고 나섰다. “큰아버지, 오늘 포식하시네”, “아버지, 취하시겠네” 웃음이 잔물결처럼 흐르는 와중에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어머님 차례였다. 어머님은 술을 받아 들고는 아버님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밝은 분위기 속에서 아버님을 추모하고 있자니 문득 그 전날 했던 이번 달 독서 모임이 떠올랐다.
내가 운영하는 독서 모임, 책영사는 매달 첫 주 목요일이 모임이라 마침 성묘일 전날인 2일에 모임을 할 수 있었다. 이번 달 주제는 공교롭게도 '아버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를 보내는 자식의 마음'이었다. 우리 모임에서는 분기별로 영화 토론도 하기 때문에 이번 달에는 책과 영화 토론이 함께 있었다. 토론 책은 미국 작가, 필립 로스의 “아버지의 유산”, 그리고 영화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 소피 마르소 주연의, "다 잘 된 거야"였다. "아버지의 유산"은 뇌종양으로 하루가 다르게 신체의 자유, 그리고 옛 모습을 잃어가는 아버지의 마지막 2년간에 대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다. 영화는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후 존엄사를 선택한 아버지를 보내는 딸의 심정을 그리고 있다. 책과 영화는 설정과 에피소드에서 유사한 면이 많지만 죽음을 대하는 입장은 다르다. “아버지의 유산”에서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죽음과 맞서 싸우기를 택하고(“죽는 것은 일이었고 아버지는 일꾼이었다”(p.278)), “다 잘 된 거야”에서의 아버지는 자신의 의지로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처럼 서로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틀리지만 이를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는 자식들의 모습만은 같았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노년의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사랑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책과 영화의 화자, 즉 필립 로스 본인과 영화의 원작자인 에마뉘엘 베르네임, 둘 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애틋한 관계는 아니었다. 둘 모두 사춘기 시절 아버지와의 대립이 있었고 권위적, 혹은 소통이 되지 않는 아버지에게 반항심이 극에 달할 때도 있었다. 즉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부모 자식 간의 관계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아버지도 늙고 자식도 나이를 먹으면서 과거의 그 모든 첨예했던 감정들이 뭉근해졌다. 세월 속에 모든 희로애락은 뭉뚱그려져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뭉툭한 사랑의 감정으로 변했다. 우리는 '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독서 모임을 준비하며 책과 영화를 보다 보니 남편 모습이 겹쳐졌다. 나에게는 예의 바른 모습을 잃으신 적이 없지만 사실 돌아가신 시아버님은 가족들에게 굉장히 가부장적인 분이셨다. 남편이 어릴 때는 바깥 일만 신경 쓰시고 어머님을 고생시키셔서 남편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도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고 나이를 먹으니 점점 그 감정이 무디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가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남편에게는 오로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만 남아 있는 듯했다. 과거의 모든 원망은 잊고 오로지 아버님의 빈자리만을 아쉬워하는 남편을 보니 어쩌면 이것이 부모 자식 간의 관계의 본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의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희미해져 결국 끈끈한 '정'으로 남는 모습 말이다.
세상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남편 어린 시절, 그렇게나 권위적이던 아버님이 당신의 성묘 자리가 이렇게나 격식 없고 자유로울 거라 상상이나 하셨을까? 타르트가 있는 성묘상이라니! 하지만 살아계셨던 그 어느 때보다 가족들은 비록 돌아가신 뒤이긴 하지만 아버님과 더 가까워 보였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느덧 성묘가 끝났다. 거짓말처럼 잠시 멈추었던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예약해 둔 식당으로 옮겨 갔다. 이제 산 자들이 정을 쌓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망자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그들이 항상 함께 하기 때문이다.
'안녕히 계세요, 아버님. 다시 또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