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연말에 중국 문학을 두 권 접했다. 나로서는 정말 드문 일이다. 평소 중국 문학은 나에게 낯선 세계였다. 가장 대중적인 중국 문학 작품이래야 삼국지였다. 삼국지 완독을 로망으로 삼는 남자들이 여전히 많지만 나는 여자라 그런지 별 흥미가 없다. 현대로 넘어온다고 해서 사정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필독 소설이던 루쉰의 “아큐정전”이 고작이다. 그 외엔 도통 생각나는 게 없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 하면 “대지”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데 이 책은 미국 작가, 펄 벅의 작품이다. 그러니까 미국 소설인 셈이다. 한마디로 나는 중국 문학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다가 연말에 다음 해 독서 모임을 위한 연간 도서 목록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위화의 작품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위화는 중국에서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유명한 작가다. 우리나라에도 “허삼관 매혈기”로 잘 알려져 있다. “허삼관 매혈기”(1995) 외에 “인생”(1993), “형제”(2005), “원청”(2021) 등 다수의 대표작이 있다. 소설 외에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2018),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2019)와 같은 산문집들도 있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역시 산문집으로 2012년 발표된 작품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현 중국 사회에 대한 작가의 시선과 생각을 담은 문집이다. 문화혁명 후 중국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했고 이제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편리함과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현대 중국의 모습 이면에는 그 변화의 속도에 채 발맞추지 못해 생기는 각종 폐단과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작가는 격심한 빈부격차와 부정부패와 같은 문제를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의 10개의 단어를 사용해서 하나씩 풀어놓고 있다. 그와 함께 자신의 글쓰기의 근원도 더듬어간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가 새로웠던 이유는 현 중국 상황에서 이러한 중국 내부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듣기란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위화처럼 세계적인 명망이 있는 작가의 경우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위화는 단순히 글쓰기로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우회적으로 에둘러 언급하는 데서 그치는 ‘무늬만 지식인’이 아니다. 그는 ‘살아있는 지식인’이다. 그러나 이런 묵직한 타이틀과는 달리 그의 책은 무겁지만은 않다. 중국 사회가 내포한 각종 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진지하고 걱정스럽지만, 또 한편으로 중국인에 대한 따스한 연민이 스며들어 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는 위화 특유의 유머도 스며 나온다. 그렇기에 이 책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독자 역시 작가의 고민과 기억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약 25년 전에 발표한 작품이라 이미 최근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여전히 권할 만한 책이다. 현대 중국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현대 중국 지식인의 양심적인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방송과 관광 상품에서 이야기하는 중국 외에 그 이면을 알고 싶다면, 중국에 대한 첫 책으로 따스한 기억을 남길 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2009년 2월, 내가 밴쿠버 브리티시 컬림비아 대학UBC에서 강연을 하며 2006년 중국에서 연간 수입이 800위안밖에 안 되는 빈민 인구가 1억 명 달한다고 얘기하자 한 중국 유학생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돈은 행복을 갸름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이 중국 유학생의 한마디를 듣자 나는 몸이 떨려왔다. 이는 한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오늘날 일부 중국인 집단이 내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날이 발전하는 중국의 이미지에 푹 빠져 아직도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가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나는 중국인의 진정한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빈곤과 기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빈곤과 기아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나는 이 중국 유학생에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행복의 기준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회문제를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학생의 한 해 수입이 인민폐 800위안에 불과한데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학생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학생은 그런 사람이 아니겠지요.”
(p.214-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