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한 부정, 그리고 '평등'에 대한 이야기
여기 한 아버지가 있다.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많지 않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몸 쓰는 일뿐이고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뿐이다. 그런 그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셋 있다. 그는 아버지로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닥치는 세월은 가혹하다. 농장 집단화, 대약진 운동, 대기근, 문화 혁명, 중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그들은 이리저리 패대기 쳐진다. 그 혼란의 세월 속에서도 허삼관은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려 애쓴다. 자기 피를 팔아서라도. 아, 그런데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알고 보니 큰아들이 자기 친아들이 아니란다.
이것이 소설, 《허삼관 매혈기》의 줄거리다. 줄거리만 들으면 주인공의 인생이 고달프고 기가 막히지만 막상 책장을 펼치면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작가 위화의 필력에 홀린 듯이 빨려 들어가게 된다. 허삼관의 인생은 가난하고 힘겨울지언정, 그의 생애 한 장면 장면은 마치 장터에서 마당놀이 한판을 보는 듯 시끌벅적하게 전개된다. 허삼관과 허옥란 부부는 매 장면마다 소리 지르고 싸우고 또 화해한다. 마치 우리네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 작가 특유의 유머가 더해지니 책장을 넘기다 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히 웃고 있었는데 어느새 가슴이 찡해지는 게 느껴진다. 허삼관은 피를 판다.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피는 그의 생명이다. 그는 가족을 위해 생명을 내어놓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큰아들, 일락이, 심지어 자기 친자식도 아닌 그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이 위험할 지경임에도 피를 팔고 또 파는 장면은 감동적이다라는 말도 부족하다.
어떻게 보면 신파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허삼관의 부성애가 감동적인 것은 그의 행동이 인간 본연의 선한 본성에서 순수하게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삼관은 유식하거나 경험이 많은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도리를 알고, 키운 정으로 마음에서부터 일락이를 자기 자식으로 받아들인다. 바로 그러한 그의 진심이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저자 위화는 이 책 《허삼관 매혈기》를 ‘평등’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평등은 어차피 인생의 종착점에 가서는 모두 다 똑같다는 의미다. 그런데 또 하나의 평등의 의미가 또 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무게의 고난이 닥친다는 거다. 이러한 ‘평등’의 개념은 허삼관에게 허삼관에게 중요하다. 허삼관은 그가 아는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똑같이 ‘평등하게’ 고난을 겪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도 힘들지만, 저 사람도 힘들다’ 그것이 허삼관이 고난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 자신과 더불어 중국 현대사 격동의 세월을 거쳐 내야만 했던 수많은 중국 사람, 수많은 중국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도 난 피를 팔아야 합니다. ...
저야 내일모레면 쉰이니 세상 사는 재미는 다 누려 봤지요. 이제 죽더라도 후회는 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스물한 살 먹어서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 봤으니 사람 노릇을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지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지…….”(p.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