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관짬뽕
날씨가 매섭던 1월 말 토요일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비장한 각오로 운전대를 잡았다. 목표는 공주. 짬뽕을 먹기 위해 내달렸다.
‘고작 짬뽕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공주까지 간다고?’
물론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몇 년 전 공주에서 하룻밤 잤을 때 짬뽕을 먹은 일이 있었다. 저녁 먹을 곳을 찾다가 ‘의외로’ 공주가 짬뽕이 유명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침 숙소 근처에 유명한 짬뽕 맛집도 한 군데 있었다. 허름하지만 사람들로 북적이던 그 식당에서 시킨 짬뽕은 국물이 유난히 빨갰다. 먹기도 전부터 매움 경보가 머릿속에 울려 퍼질 정도였다. 그런데, 어라, 한 숟갈 국물을 입에 넣었는데 생각만큼 맵지 않았다. 대신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남편은 순식간에 한 그릇 다 비웠다. 생각지도 않은 맛집의 발견이었다.
그때 이후 틈만 나면 남편은 ‘공주에 짬뽕이나 먹으러 갈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말이 쉽지 공주에서 서울은 2시간 거리다. 생각이 난다고 바로 갈 만한 곳은 아니다. 게다가 남편은 그 말을 꼭 점심때가 다 되어서 했다. 그래서 번번이 ‘이제야 말하면 어떻게 하느냐, 지금은 못 간다’며 남편을 타박하곤 했다. 그럼 남편은 ‘그냥 해 본 소리’라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몇 주째 ‘공주에 짬뽕이나’ 타령이 계속되었다. 날씨가 추우니 아무래도 얼큰하고 뜨거운 음식이 자꾸 당기는 모양이었다. 조금만 더 들으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여서 이번에는 마음을 먹고 일주일 전에 미리 통보했다. ‘다음 주 주말에는 무조건 공주에 가서 짬뽕을 먹는 거다!’
공주는 짬뽕의 도시다. 짬뽕하면 각종 해물이 잔뜩 든 얼큰한 국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보통 바다와 접한 도시가 짬뽕이 유명하다. 군산이나 강릉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그런데 공주에는 바다가 없다. 그런데도 짬뽕 성지다. 언뜻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그 까닭은 공주 짬뽕은 해물이 아닌 채소와 돼지고기를 넣어 볶아 만든 고기 육수를 사용한 ‘고기 짬뽕’이기 때문이다. 공주 3대 짬뽕이라는 동해원, 청운 식당, 진흥각 모두 고기를 고명으로 듬뿍 넣거나 사골 혹은 야채를 베이스로 한 묵직하고 진한 국물이 특징이다. 전형적인 내륙형 짬뽕이다. 게다가 공주에는 50년 이상 된 오래된 노포가 많다. 위에 언급한 동해원은 1973년에 문을 열었고, 공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부흥루는 1951년으로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노포의 전통과 내륙 특유의 진한 고기 국물 맛이 더해져 지금의 공주 짬뽕이 탄생했다. 하지만 공주 짬뽕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10년대 맛집 열풍을 타면서부터다. 한 유명 맛집 블로거가 ‘공주 5대 짬뽕’을 선정한 후 2015년 동해원이 맛집 방송에 등장했다. 그 이후 ‘공주 3대 짬뽕’, ‘5대 짬뽕’ 등이 거론되며 공주 짬뽕의 유명세는 전국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날 우리가 향한 곳은 공주 신관짬뽕이었다. ‘공주 3대 짬뽕’에 신관짬뽕이 들지는 않지만, 사람에 따라 넣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타이틀은 큰 상관이 없다. 우리에 신관짬뽕에 가는 이유는 그런 타이틀 때문이 아니라 과거 그 짬뽕 맛을 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사실 몇 년 전 그 집이 진짜 ‘신관짬뽕’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기억나는 거라곤 낡은 실내, 그렇지만 손님으로 꽉 차 열기와 활기가 가득했던 공간, 식탁 위에 놓였던 유난히 빨간 짬뽕 국물, 그리고 감탄사뿐이다. 기억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이 잡듯이 검색해 본 결과 신관짬뽕이 거기에 가장 가까웠다. 실내 사진이 좀 다르긴 했지만 그 사이 공사를 했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신관짬뽕을 치면 나오는 블로그마다 간판처럼 나오는 새빨간 국물이 확신을 더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의구심은 있었다. 만약 아니면 어쩌지? 그러면 그땐 공주에서 또 다른 짬뽕 맛집에 간 셈 치는 거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가까스로 오픈 시간인 11시 전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이미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아직 줄이 길지는 않았다. 서둘러 달려가서 꽁무니에 섰다. 사실 11면 이른 시간이다. 이렇게 빨리 점심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공주 짬뽕 문화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바로 점심 한 끼만 하는 배짱 영업시간이다. 대부분 유명한 공주 짬뽕 맛집들은 11시부터 3시 혹은 4시까지 점심 한 끼에만 문을 연다. 그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허탕 치는 거다.
공주의 이런 독특한 영업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당일 재료 소진의 원칙 때문이다. 그날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면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 둘째는 노포가 많기 때문에 주방장들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젊은 사람들처럼 하루 종일 일하기는 체력이 부친다. 그래서 하루 종일 대신 점심 한 끼만 집중해서 하는 거다. 마지막으로 공주 짬뽕 맛집들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열 필요가 없다.
첫 타임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뒤 주문했다. 가장 많이 선택하는 조합이라는 '고기 짬뽕과 군만두' 대신 '일반 짬뽕밥(10,000원)과 고기 짬뽕(12,000원)'을 시켰다. 일반 짬뽕과 고기 짬뽕의 맛을 비교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반 짬뽕밥이 먼저 나오고 곧이어 고기 짬뽕이 나왔다.
둘 다 국물이 빨갛다. 하지만 고기 짬뽕 쪽이 조금 더 빨갛다. 숟가락으로 한 번씩 떠서 맛을 본다. 역시 이번에도 고기 짬뽕이다. 고기 짬뽕 위에 고명으로 수북이 올라간 숯불 향을 입은 차돌박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기 짬뽕 쪽이 전체적으로 향도 강하고 맛도 진했다. 그렇다고 일반 짬뽕에 고기 양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고기 짬뽕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진한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망설일 필요도 없다. 무조건 고기 짬뽕이다.
이건 일반 짬뽕, 고기 짬뽕 모두에 다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신기하게도 둘 다 국물 맛이 진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렇게 국물이 빨갛고 진하면 맵거나 기름지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개운했다. 얼큰했지만 입이 얼얼할 만큼 맵지도 않았다. 도대체 그 비결이 뭘까? 어떻게 하면 이렇게 진하고 개운하고 맵지도 않은 맛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만족스럽게 한 그릇씩 비우고 나서 남편에게 맛있었냐고, 이제는 공주 짬뽕 소원을 풀었냐고 물었다. 남편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집이 아닌 것 같아.”
아……. 내 이럴 줄 알았다. 아무래도 또 공주에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