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 열풍이 걱정스럽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케이크를 만들 생각이었다. 재료를 사기 위해 베이킹 재료 가게에 갔다. 그런데 하필 꼭 필요한 화이트 커버처 초콜릿이 품절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왔을 때도 화이트 초콜릿이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생크림이라도 사서 가려고 했더니 생크림마저 없었다. 무슨 이런 날이 다 있을까? 이대로 헛걸음 할 수는 없어서 근처 대형 마트로 향했다. 그런데 거기서도 마찬가지였다. 화이트는커녕 아예 베이킹용 초콜릿 자체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금씩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꺼내 온라인으로 화이트 초콜릿을 검색해 봤다. 대부분 품절이라고 떴다. 그나마 주문이 가능한 제품 밑에는 말도 못 하게 오른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오랫동안 베이킹을 취미로 해 왔지만 살 필요가 없어서 안 산 적은 있어도 재료가 없어서 못 산 적은 없었다. 가끔 특정 재료가 떨어져도 곧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초콜릿과 같은 기본적인 재료가 없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구하려고 해도 도무지 구할 수가 없었다. 아예 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았다.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급히 핸드폰을 꺼내 ‘두쫀쿠 재료’라고 검색해 봤다. ‘마시멜로, 카다이프…… 화이트 초콜릿….’ ‘화이트 초콜릿?’ 그거였다! 두쫀쿠 재료에 화이트 초콜릿이 들어가는 바람에 이 품절 사태가 난 거였다. 어딘가 구할 수 있는 곳이 없나 싶어 검색하다 보니 나처럼 화이트 초콜릿을 찾는 글이 종종 눈에 띄었다. 전국 각지의 디저트 카페, 제과점 사장님들이 화이트 초콜릿을 구하지 못해 난리였다. 자기 가게에서는 두쫀쿠를 만들지도 않는데 두쫀쿠 열풍 때문에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디저트 공화국이다. 밥값보다 비싼 디저트를 위해 줄을 서고, 유행이 바뀌는 속도는 광속에 가깝다. 한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디저트 중 당장 생각나는 것들만 나열해 봐도 뚱카롱, 대만 카스테라, 베이글, 소금빵, 탕후루 등등이 있다. 현재 유행의 중심이 있는 건 '두바이 쫀득 쿠키', 줄여서 '두쫀쿠'다. 각종 SNS는 두쫀쿠 사진과 후기로 도배디다시피 한다. 그나마 요즘 좀 사그라들었다고 하더니 화이트 초콜릿 품절 사태를 보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디저트에 진심일까? 이에 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디저트는 대표적인 소확행의 수단이자 ‘스몰 럭셔리(Small Luxury)’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고 미래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1~2만 원으로 즉각적인 행복과 고급스러운 경험을 살 수 있는 가장 가성비 좋은 사치가 바로 디저트다. 여기에는 "나를 위한 작은 보상"이라는 심리도 강하게 작용한다.
또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크기는 작고 인구는 많아 정보의 전파 속도가 유난히 빨라서 한 가지 유행이 시작되면 삽시간에 퍼져 나간다. 여기에는 SNS의 인증 욕구와 나만 뒤질 수 없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가 강하게 작용한다.
우리 민족의 창조성도 한 몫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오리지널 디저트를 재해석하는 재주가 있다. 원래 모습에서 바껴 K 디저트로 재탄생한 디저트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끈다. 여기에 업체들의 한정 판매 마케팅, 웨이팅 전략은 지금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소비자의 심리를 부추긴다.
디저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반갑다. 그러나 이런 디저트 광풍은 걱정스럽다. 유행은 거듭될수록 강도가 더해지는 건지 지금의 두쫀쿠 열풍의 과거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 느낌이다. 사람들은 두쫀쿠를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서고 잡애서 만들겠다며 마트의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조차 싹쓸이한다. 이러한 쏠림 현상은 물가에도 영향을 줘서 근 1년간 두쫀쿠 원재료인 피스타치오와 화이트 초콜릿 등의 가격 오름세는 마치 로켓이 날아오른 듯한 모양새다. 아무리 디저트를 사랑한다지만 이러한 현상은 아무리 봐도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맛있는 디저트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디저트는 칼로리와 당분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건강의 적으로 꼽히기 쉽다. 맛있지만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게다가 다른 음식에 비해 비싸기도 하다. 지나치게 비싸면 사기가 부담스럽고 반대로 너무 싸면 기분이 안 난다. 그래서 적절한 가격이 중요하다. 이렇게 돈과 건강에 대한 염려에도 불구하고 디저트를 찾는 이유는 그 달콤한 맛이 주는 행복감 때문이다. 디저트 한입은 피로를 풀어주고 잠시나마 활력이 돌아오게 만든다. 그래서 양은 줄일지언정 디저트를 포기할 수는 없다.
디저트 시장이 건강하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두쫀쿠 열풍이 걱정스럽다. 지금의 열풍은 그 도가 지나쳐 '광풍' 수준이다. 이렇게 급하게, 그리고 강하게 몰아치는 바람은 꺼질 때도 급작스럽기 마련이다. 실은 지금의 두쫀쿠 열풍에도 어느 정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실제 두쫀쿠를 먹어 본 후기를 보면 '생각만큼 맛있지 않더라'는 글이 꽤 눈이 보인다. SNS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현실의 차이를 소비자들이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쫀쿠 열풍이 오래 가리라고 예상하기는 힘들다.
우려되는 점은 언젠가 두쫀쿠 열풍이 사라지더라도 그 유행이 가져온 후폭풍은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번 오른 재료값은 쉽사리 내려오지 않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물가에 영향을 줄 거라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그런 사태까지 가기 전에 지금의 두쫀쿠 열풍이 좀 진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두쫀쿠가 오래 갈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