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벡, "찰리와 함께 한 여행"

미국의 속살을 알기 위한 여행기

by 크림동동

존 스타인벡의 작품은 오랜만이다.


보통 스타인벡의 작품은 "분노의 포도"로 시작한다. 누구나 이름 정도는 한번 들어 본 필독서다.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에덴의 동쪽", 그리고 "진주", "생쥐와 인간" 등으로 넓혀 간다. 나로서는 영화 제목으로만 접했던 "에덴의 동쪽"이 이토록 두꺼운 원작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었다는 데 놀랐던 기억이 있다.


스타인벡의 작품은 재미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은 지루하다'는 선입견은 최고한 스타인벡의 작품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서사적이고 빠른 전개, 마치 눈으로 보이는 듯한 시각적인 묘사로 꼭 영화를 보는 듯 몰입감이 대단하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 노동자들의 힘든 현실을 드러내며 그들에 대한 따뜻한 인간애가 넘친다. 시대적 배경이 주는 한계로 작품 전체를 통해 풍기는 마초적인 냄새는 헤밍웨이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두 작가의 작품 세계는 틀리다. 스타인벡이 공동제와 노동자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남성 중심의 세계를 강조하게 된 데 비해 헤밍웨이는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개인으로서의 남성, 즉 '마초' 그 자체가 중심이다.


"찰리와 함께 한 여행" 속의 스타인벡은 노스 캐롤라이나 출신이지만 뉴욕에 산다. 58세, 지금의 기준으로는 젊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이미 노년에 들어섰다. 그렇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젊지 않은 몸을 끌고 역시 노견 '찰리'와 숙식이 가능하도록 개조한 버스, '로시난테'를 끌고 미국 전역 일주에 나선다. 이것은 관광도 아니라 작가 자신이 태어나고 활동한 '미국'이라는 땅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다. 그가 출발한 시기도 노동절 연휴 직후,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 뒤 돌아오는 때이고, 목적지 역시 나이아가라 폭포를 제외하면 딱히 관광지라 할 만한 곳이 없다. 관광지는커녕 '미국의 속살'을 보고 싶은 작가는 구석구석, 독자로서는 이름도 생소하고, 돌아서는 즉시 그마저도 잊어버리는 고장들만 돈다. 그는 자연 앞에서 경탄하고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알고자 한다. 그들이 하는 생각, 그들의 편견까지 듣는다. 그렇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관찰자다. 자신의 판단은 삼가한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사정이 있음을 작가는 이해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스스로도 꺼리면서도 '딥 사우스', 그러니까 미국 남부의 한중심에 들어간다. 인종차별로 악명높은 곳이지만 미국인으로서, 작가로서 그곳을 외면한다면 미국을 모두, 제대로 보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서 버젓이 행해지는 노골적이고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의 만행에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여행을 접고 돌아온다.


이 모든 여정은 스펙터클한 경치 묘사도, 가슴을 뛰게 하는 모험담도 없이 담담히 흐를 뿐이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다른 여타 작품에서처럼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점은 이 책을 처음 번역한 역자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하고많은 그렇고 그런 여행기 중 또 한 작품일 거라며, 그러나 스타인벡의 작품이기에 마지못해 일을 시작했던 번역가는 이 책에 담겨 있는 스타인벡의 생각과 고뇌에 감탄하고 자신의 판단이 경솔했음을 고백한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인기 있을 만한 종류는 아니다. 스타인벡이라는 작가 자체가 요즘 그다지 거론되는 작가가 아니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서양 문학이 영문학이고, 그중 미국 문학이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이상 현대 미국 문학의 다양한 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스타인벡의 작품은 읽어 볼 만하다. 소비와 부유함, 최첨단 기술 등 현대적인 이미지로만 기억되기 쉬운 현재의 미국 뒤에 어떤 것들이 쌓아 올려졌는지, 미국 사람들의 정신에는 어떤 것들이 깃들여져 있는지, 왜 몇십 년 전 타국 작가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지 그것들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 작품을 볼 것을 권한다. 여행이라는 것이 단지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구경하고 노는 것' 이상이라는 걸 이해한다면 이 책에 담겨 있는 스타인벡과 찰리의 여정도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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