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국으로 생일 축하한 날

금수복국 압구정 점심 코스

by 크림동동

남편과 나는 둘 다 생일이 3월이다. 그래서 각자의 생일은 조촐하게 축하하고 둘을 통합해서 하루 날을 잡아 근사한 곳에서 밥을 먹는 걸 연례행사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거의 호텔 뷔페에 갔다. 내가 뷔페 마니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둘 다 나이가 들어 예전처럼 많이 못 먹기도 하고, 뷔페 가격도 너무 올랐고, 둘 다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인데 너무 내 취향만 맞추는 것도 미안해서 뷔페 말고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정한 곳이 금수복국이다.


금수복국으로 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작년에 부산에 갔을 때 동래 금수복국에 갔었는데, 그때 남편은 복국과 복 껍질 무침을 먹으며 찬탄에 찬탄을 날렸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그 후에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금수복국에서 복국 한 그릇 먹을까?'하는 소리를 했다. 그래서 이참에 남편 소원도 들어줄 겸 금수복국에 가기로 한 거다.


둘의 생일 기념으로 가는 거니 그냥 복국 말고 좀 더 특별한 걸로 먹기로 했다. 다행히 금수복국 압구정점 3층에서는 코스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점심 코스 가장 저렴한 건 4만 원부터였는데 여기에는 복 껍질 무침, 조림, 튀김, 그리고 탕이 나왔다. 그다음인 6만 원 코스부터는 복 사시미가 나왔다. 그러니까 복 사시미 한 접시가 2만 원인 셈이다. 우리는 저녁에는 또 다른 계획이 있어서 너무 거하지 않게, 하지만 복 사시미는 먹어보고 싶어서 6만 원짜리 코스로 주문했다.


금수복국 코스 요리를 먹으려면 먼저 예약을 해야 한다. 3층은 모두 룸이기 때문이다. 예약은 전화로도 되고 캐치 테이블로도 가능하다. 어느 쪽이든 인당 예약금 1만 원이 필요하다. 이 예약금은 예약 당일 식사를 하고 나면 환불된다.


1970년부터 영업 중이라는 금수복국은 오랜 명성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인테리어도 그 시대를 연상케 한다. 합판으로 두른 벽, 창이 있는 목조 미닫이창, 옛날 교실 바닥 같은 나무 마룻바닥. 70년대 말 80년대 초, 어딘지 일본 색이 많이 남아 있는 듯한 고색창연한 분위기의 룸에 앉아 있으면 내가 80년대에 있는 건지 2020년대에 있는 건지 헷갈린다. 하지만 복국이란 원래 해장국, 신세대보다는 아저씨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그래서 이런 올드한 분위기가 복국에 더 잘 어울리는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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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받은 룸에 들어가면 이미 샐러드가 세팅되어 있다. 복어살이 들어간 샐러드다. 복어 살은 쫄깃쫄깃하고 담백하다.


코스의 시작은 양송이 수프다. 맛을 떠나서 솔직히 양송이 수프는 좀 의외다. '복국'이란 음식과 어울리는 것도 아닌데 굳이 '수프'가 있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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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송이 수프 이후 복 사시미가 나왔다. 이제야 진짜 코스 요리를 먹는 느낌이다.


처음 먹어 본 복 사시미는 반투명해서 사시미 밑의 접시가 비쳤다. 서빙하시는 분이 먹는 법을 알려주셨는데, 복 사시미는 일반 회와는 달리 같이 나온 미나리와 본 껍질을 가운데 놓고 돌돌 싼 후, 역시 함께 나온 특제 소스에 찍어 먹으면 된다고 하셨다. 곁들여져 나온 라임은 입맛에 따라 뿌려도 되고 뿌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알려주신 대로 먹었더니 너무 맛있었다. 회는 담백, 쫄깃했다. 도미회 같지만 그보다는 얇아서 씹기에 좋았다. 함께 넣은 미나리 향익 향긋했고 특히 소스가 맛있어서 입맛을 돋우었다. 하지만 라임은 아니었다. 라임을 뿌렸더니 라임 향이 너무 강해 복어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딱 한 번 라임을 뿌린 후 옆으로 치워뒀다.

KakaoTalk_20260328_164401567_03.jpg 너무나 얇은 복 사시미
KakaoTalk_20260328_164401567_04.jpg 특제 소스
KakaoTalk_20260328_164401567_05.jpg 미나리와 복껍질을 가운데 넣고 돌돌 싼 복 사시미

복 사시미의 가장 큰 단점은 가격이었다. 말이 한 접시지 사실 접시 절반에 불과했고 접시가 비칠 정도로 얇게 썬 거라 사시미만으로는 배가 차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단지 '복 사시미가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복 사시미를 후딱 먹어치우고 아쉬운 입맛을 쩝쩝거리고 있으려니 이제 조리된 음식들이 나왔다. 먼저 복 껍질 무침이었다. 사실 금수복국에 다시 간다면 가장 먹고 싶었던 게 바로 이 복 껍질 무침이었다. 작년에 남편이 먹으면서 얼마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는지, 그때 시간이 너무 늦어 남편이 먹는 걸 쳐다만 보던 나도 절로 침이 넘어갈 정도였다. 그렇게 반년을 기다리도 겨우 먹게 된 참이라, 드디어 복 껍질 무침이 나오니 심지어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KakaoTalk_20260328_164401567_06.jpg 감동의 복 껍질 무침

맛은 말해 뭐 할까? 딱 기대하던 대로였다. 남편과 서로 많이 먹으라고 권하면서도 하나라도 더 챙겨 먹으려고 은근히 젓가락 싸움까지 벌였던 유일한 음식이 바로 이 복 껍질 무침이었다. 맛도 좋고 본 껍질도 푸짐하게 들어 있어 아주 만족스러웠다. 유일한 단점은 역시 양이었다. 아무래도 코스의 일부라서 양이 적었다. 이것도 역시 다음에는 단품을 시켜 아주 배불리 먹어주지라 다짐했다.


매운 요리 다음은 달달한 조림이었다. 까치복 조림과 튀김이 나왔는데, 조림은 데리야끼 조림이었는지 달달하면서도 짭조름했다. 누구나 무난하게 좋아할 맛이었다. 튀김은 복어 외에 꽈리고추, 고구마튀김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복어 튀김이 아주 괜찮았다. 육질이나 맛이 마치 닭고기를 먹는 듯했다. 다이어트를 위해 단백질 섭취에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아주 좋아할 것 같았다.

KakaoTalk_20260328_164401567_07.jpg 조림과 튀김

마지막으로 코스의 하이라이트, 탕이 나왔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지리, 즉 맑은 탕으로 주문했다. 복국에 들어간 복은 까치복이라고 했다. 탕은 크고 상대적으로 밥 양은 아주 적었는데 코스 요리이기 때문에 그런 듯했다. 생선은 세 토막 들어 있었고, 미나리와 팽이버섯이 토핑으로 떠 있는 가운데 콩나물과 무가 아주 넉넉히 들어 있어 시원했다. 남편은 식초를 쳐서 먹었지만 나는 그대로 먹었다. 어느 쪽이든 맛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추천하자면, 처음에는 식초를 뿌리지 말고 먹다가 중간 즈음부터는 식초를 넣어 먹는 게 가장 좋을 듯하다.

KakaoTalk_20260328_164401567_08.jpg 복 지리(복어 맑은 탕)

이렇게 뜨끈하게 탕까지 비우고 났더니 후식으로 오미자차가 나왔다.


배도 부르고 건강한 식사였다. 올해 생일 기념 식사는 이렇게 복어로 건강을 보양하는 걸로 끝났다. 복어의 힘으로 한 해 잘 보내고 내년에 또 맛있는 걸 먹으러 가야지. 그때까지 우리 둘 다, 잘 살아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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