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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Jul 01. 2024

핸드폰 요금제 때문에 호구되는 느낌이 든다

알뜰폰 요금제로 갈아타려다 주저앉은 이야기

   지난주에 통신 요금 선택 약정을 갱신했다.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통신 요금 약정 기간이 만료되어 다시 같은 조건으로 약정 할인을 받기로 했다는 말이다. 나는 이런 일이 참 싫다. 여기서 말하는 ‘이런 일’이란 통신 관련 문제를 말하는 거다. 왜냐하면 통신 요금제는 아무리 들어도 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 TV, 핸드폰 요금제를 알아보거나 문의할 일이 생기면 긴장부터 된다. 상담사가 모르는 단어를 줄줄이 쏟아내고 여기다가 할인율, 상품 결합, 가족 결합 등 온갖 숫자까지 나오기 시작하면 어느새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진이 빠지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만약 기기 변동이나 통신사 이동 같은 변수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머릿속은 아수라장이다. 그날 내로 상담이 끝날지 장담할 수도 없을뿐더러 상담사나 나, 둘 중 하나가 스트레스로 울면서 전화를 끊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으로, 주변에서도 통신 요금제는 도통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는 자기 남편은 평소에는 부처님 같은 사람이지만 딱 한 번 화를 낸 적이 있는데, 그때가 바로 핸드폰 요금제를 상담했을 때였다고 했다. 통신 요금제와 관련하여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싱가포르에 살 때 통신 요금제를 갱신해야 했던 때였다. 그때 통신사 대리점에 있었던 시간만 해도 아마 3시간은 되었을 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어로 해도 알아듣지 못할 복잡한 요금제를 영어로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미칠 지경이었지만 우리를 담당하던 상담 직원은 우리보다 더 답답하면 답답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다. 나중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간신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이런 지경이니 평소엔 통신사는 되도록 멀리 하며 산다. 상담하고 싶은 일도 없을뿐더러, 모쪼록 그럴 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도 감히 이번 약정이 끝나면 알뜰폰으로 갈아탈 생각을 했으니 나도 내가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나도 모르겠다. 게다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갈아타지도 못했다. 




  1달 전에 통신사에 문의할 일이 있어 전화를 했다. 용건이 해결되어 전화를 끊으려는데 상담사가 내 핸드폰 요금 선택 약정 기간 만료일이 다가오니 갱신하겠냐고 물어봤다. 그때 이참에 알뜰폰으로 갈아타야겠다는 생각이 든 게 화근이었다. 통신사를 갈아타기 전에 제대로 알아봐야 하는 건 기본이었기 때문에, 일단 전화를 끊고 천천히 조사를 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고선 정말 매일 ‘생각’은 했다. 하지만 통신사에 전화할 생각을 하니 머리부터 지끈거려 도무지 손이 가지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면서 약정 만료 알림이 점점 자주 울리는 걸 애써 무시했다. 그러다가 약정 만료 3일 전,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통신사에 전화를 했다. 만약 갱신하지 않고 이대로 약정이 만료되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상담원은 간단히 대답했다. 그럴 경우 통신 요금 할인이 없어져서 원래 계약한 요금, 즉 지금의 약 2배 가량의 요금을 내야 한다는 거였다. 막연히 약정이 만료되어도 지금의 요금이 계속 유지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부랴부랴 알뜰폰 요금제에 대한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시 우리 집 통신 요금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자면 핸드폰 요금제는 인터넷과 결합되어 있고 가족들끼리도 결합되어 있다. 이런 상황이라 고려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핸드폰 요금제만 알뜰폰으로 옮겨도 인터넷 할인 적용을 지금처럼 받을 수 있을까? 알뜰폰으로 옮긴다면 어느 알뜰폰 통신사로 옮겨갈 것인가? 또 그중 어떤 알뜰폰 요금제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가족 모두가 다 옮겨가야 하나, 아니면 한 명만 옮겨도 되나? 그 경우 통신 요금 총액은 줄어드는 걸까, 늘어나는 걸까?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아침부터 기존 통신사로, 알뜰폰 통신사로, 여기저기 전화를 계속 돌렸다. 인터넷 창도 띄워 급히 정보를 검색했다. 이게 싼 건가, 아닌 건가? 


  

  그렇게 전화를 몇 통이나 하고 통신사의 인터넷 담당, 핸드폰 담당 상담사, 알뜰폰 통신사 상담사와 상담을 하고 질문 세례를 퍼붓고 종이에 계산을 하는 등, 약 2시간 동안 온갖 북새통을 피웠다. 그리고서는 요금제를 바꾸지 않기로 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맥 빠지는 결말이긴 하다. 하지만 알고보니 남편이 통신 요금을 전액 할인받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계산해도 현재 요금제가 가장 저렴했다. 알뜰폰으로 옮길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가 대충 계산한 바로는 그랬단 이야기다. 숫자에 밝은 누군가가 모든 조건을 따져서 금액의 마지막 한 자리까지 세세하게 비교해 본다면 알뜰폰 쪽이 더 쌀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때쯤 되니 나도 지칠 대로 지쳐서 설령 얼마 더 낸다고 해도 충분히 낼 의향이 있었다. 통신 요금제에 진을 빼고 나니 그깟 얼마 안 되는 돈 아끼는 것보다 빨리 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마무리를 짓고 나도 도통 개운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게 머리를 굴렸건만 여전히 내가 호구가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통신 요금제 문제를 건드리고 나면 항상 이런 기분이 든다. 도대체 왜 그런지 곰곰 생각을 해 봤는데, 아무래도 이쪽은 내가 모르는 세계여서 그런 것 같다. 모르는 영역에서 모르는 단어와 모르는 숫자를 가지고 씨름하려니 끝이 나도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항상 뭔가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아아, 그렇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이제 한동안은 평화다. 앞으로 12개월은 통신 요금을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럼 차라리 24개월이나 36개월 약정을 하지 그랬냐고? 그러기에는 12개월 후에는 혹시 알뜰폰 요금제를 다시 알아볼 볼 힘이 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그런 건 미래의 나한테 맡기기로 한다. 현재의 나는 잠시 통신 요금제와는 휴전에 들어갈 생각이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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