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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Jul 16. 2024

'압구정 사모님'이 되어 행복한가요?

  압구정에 아파트를 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자 주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질문 홍수가 쏟아졌다. 가장 많이 물은 건 어떻게 압구정의 아파트를 사게 되었냐는 거였다.      


  “갑자기 어떻게 거기를 살 생각을 했어?”

  “어떻게 산 거야?”     


 다른 자리라면 하지도 못할 노골적인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얼마에 샀어?”

  “많이 올랐지? 얼마나 올랐어? 지금 얼마야?”     


  그나마 이건 양반이었다.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도 있었다.    

  

  “재건축 언제 된대?”

  “재건축되면 100억 간다며?”     


  내가 대답을 우물거리고 있으면 상대편은 이미 다음 말을 하고 있었다.     

  

  “매일 백화점에서 장 보겠네? 좋겠다.”

  “이제 걱정할 게 없겠다. 앞으로는 좀 쓰고 살아.”

  “압구정 사모님!”     


  덕담이랍시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덕담치고는 듣는 사람으로서 참 편치 않았다. 특히 마지막 말은 불편했다.




 



 “사모님”     


  압구정 아파트를 사면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였다. 나는 이 말이 어색했다. 사전에 따르면 ‘사모님’이라는 말은 ‘스승의 부인, 남의 부인, 윗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하는 ‘사모님’ 소리에 이런 의미가 담겨 있지 않았다. 부동산, 인테리어 업체가 부르는 ‘사모님’은 ‘아줌마’란 호칭 대신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모님’ 뒤에 나오는 내용은 말들은 나를 무시하고 가르치려 드는 말들이었다. 존중은커녕, 무례하게 느껴졌다. 어떤 때는 화가 치밀기조차 했다.


  친구들이 하는 “압구정 사모님”은 다른 의미로 거북했다. 장난삼아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압구정 아파트를 사기 전이나 후나 같은 사람인데 친구들의 태도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대출이나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 오래된 집에 사는 고충을 털어놓으려 해도 ‘배부른 소리’ 한다며 타박이나 듣기 일쑤였다. ‘압구정 사모님이 엄살을 부린다’는 거였다. 아무도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지 않았다. 서먹하고 외로웠다.     








  최근 “진정한 하차감은 자동차가 아니라 지하철역”이라는 기사를 봤다. 돈이 없어도 리스로 탈 수 있는 독일 3사 차보다 고급 아파트가 몰려 있는 지하철 도곡역에서 내릴 때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더 받는다는 내용의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라는 거였다. 기사는 그 글이 노골적으로 강남 제일주의와 부동산 계급주의를 드러냄으로써 공분을 사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의 그 글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부동산 계급주의는 이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는 문제의 글

  

  

  아파트가 자산의 척도로 작용하고 사는 동네가 이름표이다. 서울시 행정 구역을 부동산 가격 서열로 나눈 부동산 계급표가 돌아다닐 정도다. 그렇다면 이 계급표의 최상단에 자리잡은 강남구, 그 강남구 중에서도 핵심지로 꼽히는 압구정에 아파트를 산 나는 소위 ‘사모님’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모님’이 되면 행복할까? 


2024 부동산 계급표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현상을 ‘파노폴리 효과’라고 부른다. 파노폴리 효과란 특정 제품을 소비하면서 특정 계층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심리로 주로 명품 소비를 설명할 때 자주 거론된다. 즉, 내가 가진 명품백, 내가 사는 아파트, 내가 사는 동네가 ‘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파노폴리 효과로 얻는 행복은 허무하다. 내가 소유한 물건으로 잠시 특정 계층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다. 처음의 흥분이 지나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소비하기 전과 같은 ‘나’이다. 나 역시 ‘압구정 사모님’으로 처음 불렸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 우쭐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지 않고 ‘압구정 사모님’이라는 프레임으로만 볼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점심을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 이야기에 내가 하소연하기 시작하자 친구는 여느 때처럼 나에게 ‘압구정 사모님이 그런 말 하면 어쩌냐? 다른 사람들한테 돌 맞는다.’며 핀잔을 주었다. 나는 평소와는 달리 발끈했다. 신경질적으로 ‘압구정 사모님’이라는 말 좀 그만하라고 했다. 친구는 당황한 모습이었다. 내가 ‘스스로 ‘사모님’이라고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데 ‘사모님’이라고 불리는 상황이 힘들다‘고 이야기하자 조금은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오랜만이었다. 나는 속이 약간 트인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날 친구와 헤어지자 다시 의심이 들었다. 우리가 헤어지자마자 친구에게 나는 다시 “압구정 사모님”으로 되돌아간 것은 아닐까? 궁금했다. 다음에 우리가 만날 때 친구는 나를 또 “압구정 사모님”으로 부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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