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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Sep 19. 2024

<H마트에서 울다>

엄마의 갈비찜을 기억한다

  명절 연휴 동안 <H마트에서 울다>를 읽었다. 가볍게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엄마와 딸의 정서를 음식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딱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이렇게 엄마와 사이좋을 수 있을까?’




  물론 저자, 미셸 자우너 역시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며 엄마와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이 책 전체가 저자의 엄마에 대한 절절한 사모곡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일까 엄마와의 추억이 담겨 있는 음식에 대한 묘사는 정말 맛깔스럽다. 예를 들어 자우너가 어린 시절 한국 외갓집에 갔을 때 중국 요리를 시켜 먹던 장면을 보자.      


  “아파트 출입구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온 남자는 철가방 문을 열고 수북한 면과 돼지고기 튀김과 걸쭉한 소스가 담긴 그릇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놓았다. 그릇마다 비닐 랩이 씌워 있고, 옴폭 꺼진 랩 안쪽에는 수증기 방울이 몽글몽글 맺혀 있었다. 우리는 랩을 벗겨낸 다음 고기와 야채 덩어리가 든 검정 소스를 면 위에 골고루 얹고 반들반들하고 끈적끈적한 반투명 오렌지 소스는 돼지고기 튀김 위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시원한 대리석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퍼질러 앉아 신나게 음식을 나눠 먹었다.”(p.18)     


  마치 코앞에 막 배달된 뜨거운 짜장면과 탕수육이 있는 듯하다. 또 다른 장면을 보자. 이번에는 한밤중에 엄마와 저자가 외할머니의 냉장고를 뒤진다.      


  “우리는 검푸른 어둠에 싸인 꿉꿉한 부엌 싱크대 앞에 서서 갖가지 반찬이 꽉꽉 들어찬 터퍼웨어 통을 모조리 열고 함께 그것들을 집어먹었다. 밥솥 뚜껑을 열어놓고 그 자리에서 뜨끈뜨끈한 보라색 콩밥을 한 숟가락 가득 입에 퍼 넣고, 달콤하게 조린 검정콩, 파와 참기름을 넣고 아삭하게 무친 콩나물, 한입 베어 물면 시큼한 즙이 입안 가득 퍼지는 오이김치를 번갈아가며 정신없이 퍼먹었다. 우리는 낄낄거리다가 서로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면서 간장게장을 손으로 집어먹었다. 토실토실한 생게 다리를 쪽쪽 빨았다가 혀끝을 껍질 사이로 밀어넣었다 하면서 짭조름하고 몽글몽글한 살을 발라먹는 틈틈이 손가락에 묻은 간장을 핥아먹었다. 엄마는 깻잎 조림을 오물오물 씹어 먹으면서 말했다. ”넌 진짜 한국 사람이야.“(p.51)     


  마치 어두운 부엌에서 냉장고를 뒤지고 있는 두 모녀가 보이는 듯하지 않은가? 이렇게 실감 나게 음식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그 음식 하나하나에 엄마가 묻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엄마의 음식’이 있을까? 그런데, 순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이럴 수가! 엄마와 살가운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사이가 나쁘지도 않은데 왜 나에게는 엄마의 손맛이라 할 만한 것을 하나도 떠올릴 수 없을까? 내가 그렇게 나쁜 딸인 걸까? 아니, 아니다, 뭔가 있다. 뭔가 코끝을 스치는 것이, 혀 끝에 감도는 맛이 있다. 이제 막 추석을 지났고, 그러니... 그래, 생각났다. 바로 엄마의 갈비찜이다.      




  엄마의 갈비찜은 세계 최고다. 고기와 감자, 밤을 푸짐히 넣고 오랜 시간 푸욱 찐 갈비찜의 그 기막힌 맛과 냄새는 절대 잊을 수 없다. 엄마는 명절이면 갈비찜을 했고, 그래서 나는 갈비찜이 먹고 싶다는 이유로 명절을 기다렸다. 엄마의 습관은 나한테도 이어져 나 역시 명절이 되면 갈비찜을 한다. 남편의 발령으로 잠시 해외살이를 할 때도 명절만 다가오면 갈비찜 할 고기를 어떻게든 구해 오랜 시간 부엌에서 고기를 삶곤 했다. 대충 인터넷에서 뒤진 레시피를 따라 했지만, 내 솜씨도 나쁘진 않았는지, 한 번은 우리 집에 온 캐나다인 영어 선생이 ”지금 네가 뭘 요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냄새가 기가 막히다“고 한 적도 있었다.


  사실 갈비찜은 집집마다 하는 명절 음식이다. 시어머니도 갈비찜을 준비하고 나도 만들고 엄마도 한다. 하지만 단연코 엄마의 갈비찜을 따라갈 수는 없다. 이건 내가 엄마 딸이라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한 갈비찜과 할머니, 외할머니의 갈비찜을 다 먹어 본 아들이 보증한다. 내가 아들한테 어느 집 갈비찜이 제일 맛있었냐고 살짝 물었더니 아들은 내 눈치를 좀 본 후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외할머니 갈비찜이 제일 맛있어요.“ 했다. 나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이번 추석에는 갈비찜을 하지 않았다. 날도 덥고, 물가도 오르고 먹을 사람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마트에서 팔고 있는 포장 갈비로 대신했다. 소포장이라 먹기에 간편해 보이는 데다 보기에는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남편도 생각보다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한 걸까? 아무리 추석이 추석같이 않다 해도 갈비찜까지 없으니 더 명절 같지 않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비록 추석은 지났지만 늦게라도 갈비찜을 한번 해야겠다. 포장 갈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누구의 손맛도 아닌 대기업의 맛으로는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고기를 사야겠다. 배를 갈아야겠다. 남편은 살찐다면서도 좋아하겠지. 명절에 내가 한 갈비찜을 먹으며 맛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싶다. 엄마도 이런 기분으로 명절에 갈비찜을 했을까? 이렇게 나도 엄마를 닮아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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