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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의 계엄 소동

왜 창피는 우리 몫인가

by 크림동동

새벽 알바 때문에 10시 30분 전후로 잠자리에 든다.

어젯밤은 10시 30분을 살짝 넘겼다.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한번 흝어보던 참이었다.

뉴스 속보에 '계엄령'이라는 말이 눈꼬리에 걸렸다.

처음에는 뭔가 잘못 본 줄 알았다.

2초 정도 후, 뭔가 이상해서 다시 뉴스 홈으로 돌아가 봤다.

그랬더니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 10시 30분 비상계엄령 선포!"


비상계엄령? 군사독재 시절을 장식하던 그 단어?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나 환기되던 용어?

그런데 그건 이미 다 지나가버린 과거 아니었던가?

과거의 망령이 갑자기 살아나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이제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참에.


겁이 나거나 놀랍다기보다 너무 황당했다.

이 상황이 마치 한 편의 코미디 같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군인들이 나서는 건가? 해외 출국 금지? 비상계엄이 되면 뭐가 달라지는 건데?'


이미 잠자리에 누운 남편한테 급히 알렸다. 내 말에 화들짝 놀란 남편도 핸드폰을 검색해 보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곧 별일 아닐 거라고 했다.


사람들 의견이 궁금해 네이버에 들어갔더니 카페 접속이 안 되었다. 접속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카페 창에 있던 카페들이 나오질 않았다. 뉴스 댓글창도 접속이 안 되었다.


'이게 언론 통제인가?'


기가 막혔다. 군부 정권의 쿠데타가 일어나면 언론부터 통제한다더니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자 그제야 조금 겁이 나기 시작했다. 온라인 주부 커뮤니티에 들어갔더니 그곳은 별 이상이 없는 듯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들고 있었다. 한편으론 이게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 여파를 걱정했다. 내일 학교 등교하느냐, 주식 시장은 어떻게 될까, 당장 부모님이 내일 비행기 타셔야 하는데 비행기가 뜰까 걱정하는 글도 있었다. 누구도 그에 대해 뚜렷이 답을 줄 수가 없었다. 모두들 이런 엄청난 상황이 벌어진 데 대해 황당함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싱가포르에 있는 아들도 이 뉴스를 본 모양이었다. 보이스톡이 다급하게 울렸다.

아들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우리도 답해 줄 말이 없었다.


그렇게 통화하던 중, 아들이 말했다.


"엄마 아빠, 그냥 이쪽으로 올래요?"


웃음이 나왔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싱가포르에 간다는 건 말도 안 되었다. 만약 진짜 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큰일일 텐데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랐다.


나는 일단 잠을 청했다.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당장 새벽 알바는 가야 했기 때문이다.


새벽 2시 정도에 잠이 깼다.

제일 먼저 핸드폰부터 체크했다.


"계엄령 해제 의결안 통과"


아,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비상계엄 상황이 아니구나.


안도하는 기분으로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예상대로 온 세상이 난리였다.

국내 뉴스도, 외신도, 우리나라의 하룻밤의 비상계엄 소동으로 폭발할 것 같았다.


알바를 다녀오며 미국에 있는 친구와 카톡을 했다.


우리 둘 다 같은 말을 했다.


'정말 창피하다.'


오전 중에 아들에게서 괜찮냐는 카톡이 왔다.


가족 단톡방에서 서로 괜찮다는 말을 하다가 다시 한번 같은 말이 나왔다.


'정말 창피하다.'


일을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국민이 창피해야 하는 걸까?


비상계엄이란 것은 대통령이 사용할 수 있는 정말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수단'이 아닐까? 그걸 이렇게 남용하다니, 그런 지도자를 둔 국민으로서 창피할 따름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빌어본다.


2024년을 생각지도 못하게 '화끈'하게 마무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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