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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 전시를 다녀와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이를 만나다

by 크림동동


지난주에 툴루즈 로트렉 전시회를 다녀왔다.

툴루즈 로트렉은 인상파 화가이다. 그는 난쟁이 같은 체구 때문에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인물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바즈 루어만 감독의 2001년작 영화, “물랑루즈”에서일 것이다. 그 영화 속에서 그는 주인공을 돕는 조역으로 기이할 정도로 작고 일그러진 몸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감독 특유의 과장되고 화려한 색채의 향연 속에서 그의 그런 모습은 어쩐지 썩 잘 어울렸다.

예술가는커녕 마치 서커스의 어릿광대처럼 보이는 툴루즈 로트렉에 대한 묘사는 감독의 지나친 과장이 아닐까 했는데, 알고 보니 사실에 근거한 고증이라는 점은 조금 놀라웠다. 실제 툴루즈 로트렉은 어릴 적 불의의 사고가 겹친 탓에 키가 제대로 자라지 않은 불구였다. 귀족 가문 출신이었음에도 이러한 신체적 결함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외면받았다. 그의 외로운 영혼은 그림 속에서 위안을 찾았고 어머니만이 그를 평생 지지하고 품어주었다.


이러한 배경 덕분인지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 세계는 여타 인상파 화가들의 그것과 다르다. 그의 그림에는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나 예쁜 소녀들 대신 사람들, 그것도 사회적으로 하층 계급, 춤을 추는 무희와 곡예를 하는 서커스 단원들이 있다. 귀족 세계에서 소외된 귀족 작가는 사회적으로 천시되는 이들에게서 영혼의 동질감을 느낀 것일까? 그의 그림 속에서 이들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표정이 살아있다. 때로는 질투하고 때로는 간교하게 머리를 굴린다. 그런가 하면 피곤에 절어 늘어지기도 한다. 그들을 그리는 선은 빠르고 색은 강렬하다. 그들의 움직임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화가의 마음이 읽힌다. 이런 툴루즈 로트렉 그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여타 인상파 화가의 그림 중 어느 것과도 비슷하지 않다. 바로 이러한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 그것이 바로 그의 작품 세계의 가장 큰 특징이다.

캉캉춤을 추는 무희들. 표정이 각기 다르고 살아 있다.


툴루즈 로트렉의 모델이었던 인기 댄서, 잔느 아브릴.


이날 전시는 도슨트의 해설과 함께 진행되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설명하기에 앞서 화가의 작품에 대해 전반적으로 안내하며 도슨트는 이런 내용의 말을 했다. “툴루즈 로트렉은 많은 인상파 화가들과 친분을 쌓았지만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자기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 문장이 가슴에 꽂혔다.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내가 언제나 바랬던 것이 아닌가! 나는 혼자 있으면 외로워 사람들 주변을 맴돈다. 그러다 보면 주변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어느 순간 내 마음이 휘둘리는 걸 발견한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우울해한다. 그렇다고 만나지 않기에는 너무 외롭다. 매일매일, 매 순간이 고투다. 어떻게 균형을 찾아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 화가는 그것을 이루었다. 그는 많은 인상파 화가 동료들과 교류했지만 자기만의 세계를 잃지 않았다. 그의 세계는 그의 것이었다. 그의 그림은 누가 봐도 ‘그만의 것’이다. 그가 다시 보였다. 영화 “물랑루즈”의 보잘것없는 조연이 갑자기 인생의 어려운 과제를 풀어낸 위대한 화가로 보였다.


툴루즈 로트렉의 그림이 전적으로 내 취향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당시를 풍미했던 수많은 인상파 대가들의 빛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자기만의 길을 꿋꿋이 간 사람, 그런 화가의 작품을 접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날의 전시는 나에게 값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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