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친숙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도서관에서 졸다 일어나 이 글을 쓴다.
창피하지만 항상 도서관에 가면 한 번은 꼭 존다. 변명하자면, 도서관은 너무 조용하고, 따뜻하고, 의자도 편안하다. 도서관에서 졸았던 주제에 말도 많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하여간 간단히 말해 도서관은 잠자기에 딱 좋은 환경이라는 거다. 그래서 나 말고도 간혹 도서관에서 자는 사람들을 간혹 본다. 언젠가 모 도서관 열람실에서는 옆 책상에 앉은 학생이 내가 앉을 때부터 일어날 때까지 내내 자는 걸 본 일도 있다. 또 한번은 옆 테이블에 앉은 어르신이 아예 나지막이 코를 골기도 했다. 요지는 도서관에서는 잠들기가 정말 쉽다. 물론 내가 도서관에 가서 잠만 자고 오지는 않는다. 잠에서 깨면 지독하게 창피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집중력을 짜내어 두 배로 열심히 읽고 쓰고 온다. 그래서 잠을 자더라도 도서관에 가는 편이 전체적인 일의 효율성 면에서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도서관에 자주 간다. 보통 하루에 한 번 정도 가지만, 딱히 외부 약속이 없는 날은 아침 먹고 나서 도서관에 갔다가 점심 먹으러 집에 온 후 다시 가기도 한다. 오전, 오후, 같은 곳에 가기도 하고, 기분 전환 삼아 각기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한다. 물가 비싸고 차 막히는 이 동네에서 그나마 좋은 점이라면 가까운 거리에 도서관이 많다는 거다. 대체로 크지는 않고 동네 주민들이 이용할 정도의 작은 규모들이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갈만한 도서관이 여기저기 있다는 사실은 큰 장점이다. 나는 도서관에 가서 글을 쓰기도 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멍때리기도 하고 신간 체크도 했다가 괜스레 서가에서 이책 저책 뽑아 보기도 한다. 도서관은 주머니가 가벼워도, 옷차림이 허름해도,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신경 쓰지 않고 갈 수 있는 만만한 장소이다.
나는 도서관이 참 좋다. 도서관에서는 책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교실 및 때때로 무료 영화 상영회, 혹은 저자 강연회, 동네 역사 탐방과 같은 특별 프로그램도 열린다. 도서관 벽에 붙은 공지만 눈여겨봐도 참여하고 싶은 행사들이 종종 눈에 띈다.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문화교실 프로그램은 도서관에서 지원하는 것이기에 수업료가 저렴하다. 만약 그조차도 부담스럽다면 주민들이 운영하는 동아리를 찾아봐도 좋다. 도서관이라고 책 읽는 동아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의 취향에 따라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동아리들이 있다. 시간만 맞으면 이런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새로운 이웃을 사귀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이 동네는 아니지만 예전에 살던 동네 도서관에서 독서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인천, 다시 서울로 들어와 강남 인근 지역, 그리고 현재 강남에서 살고 있다. 각각의 터전에서 도서관을 이용해 보니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일수록 도서관 인프라가 튼튼하다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돈이 많은 동네일수록 도서관도 많고 프로그램도 다양하더라는 말이다. 사실 이렇게 소위, ‘정신이 돈에 휘둘린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다. 지난주에 그런 현실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는 일이 있었다.
지난주 수요일, 내가 독서 동아리를 운영하는 도서관을 관할하는 자치구에서 도서관 동아리 간담회가 있었다. 정식 명칭은 ‘2024년 00구 독서 동아리 활성화 사업 독서 동아리 간담회’였다. 이 자리에는 각 도서관의 동아리 담당 사서 외에 동아리 대표가 1명 참석할 수 있었다. 나는 2년 전에 같은 간담회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이 좋아서 이번에는 자원했다. 얼떨결에 간 자리였지만 구청의 도서관 운영에 대한 정책 방향도 듣고 다른 동아리들의 활동에 대해알 수 있어 자극을 많이 받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심 기대가 컸다.
사실 자치구의 지원에 대해서는 큰 기대가 없었다. 이미 2년 전 간담회에서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예산이 더 줄어들 거라는 암울한 이야기가 있었다. 2년 사이 경제가 나아진 것도 아니니 사정이 좋아졌을 리는 없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이 칼바람을 다른 동아리들은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는지, 그래도 구청 정책에서 뭔가 희망을 발견할 만한 여지는 없는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어떤 자극을 주었는지 등등이었다. 알고 싶고 묻고 싶은 게 넘쳐났다.
그러나 사정은 예상대로였다. 아니,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간단히 말해 정책은 뒤떨어져 있고, 그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은 정체되어 있었다. 예산은 예산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2024년 한 해 자치구 전체 도서관 동아리 지원 사업에 배정된 금액은 단돈 700만 원이었다. 우리 도서관에 소속된 독서 동아리만 해도 11개, 우리 자치구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 등록된 동아리는 13개라고 했다. 이 두 도서관의 동아리만 합쳐도 이미 24개인데, 도서관이 이 두 개만 있는 게 아니다. 관내 수십 개의 동아리들이 저 700만 원을 나누어 써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니 규모가 작은 도서관 동아리의 경우엔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한 경우도 생긴 모양이었다. 다행히 나는 그래도 큰 도서관에 소속되어 있어 올해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래봐야 기껏 20만 원에다가, 그나마도 8월 이후에 집행되어 사실 있으나 마나 한 돈이었지만 어쨌든 지원금은 지원금이었다. 나를 비롯한 다른 동아리들은 금액과 집행 방식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이 미약한 금액마저 구경하지도 못한 작은 동아리들의 ‘부럽다’는 말에 입을 닫아야 했다.
예산이 적은 것도 문제였지만 그와 함께 다른 자치구에 비해 도서관 행사에 대한 구청 차원의 지원이 너무 미비하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강남구, 서초구, 용산구, 종로구 등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도서관과 책 페스티벌과 이벤트에 비해 우리 자치구의 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는 거였다. 아니, 행사 이전에 통합 도서관 홈페이지조차 수년째 리뉴얼되고 있지도 않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은 이 모든 게 자치구에서 도서관을 지원할 여력, 즉 경제력으로 귀결되었다. 씁쓸했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 서울에서조차 이런 격차라면 지방으로 내려가면 도서관 인프라가 어떤 수준일까? 말하지 않아도 뻔할 거였다.
문제는 내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사회 각 부분에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문화로까지 눈을 돌릴 여력은 없을 터였다. 우리들의 정신 세계를 풍요롭게 해 주는 책이 이렇게 갈수록 괄시받는 현실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 성인 문해력이 가장 뒤쳐진다’는 보도를 본 참이었다. 초등학생 연령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던 문해력이 성인이 되서 이렇게 떨어진 데에는 아마도 우리나라가 IT 강국인 탓이 큰 것 같다는 분석이었다. 즉, 사람들이 책 대신에 유튜브와 같은 영상, 특히 쇼츠처럼 짧은 영상을 너무 많이 본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짧은 영상에 익숙해져 버리면 글을 해석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해진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이해하는 능력이 없으니 다른 사람의 의견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비판적으로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없으니 곧이곧대로 듣는 것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항상 옳은 방향으로 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떻게 될까? 그것을 참견하고 바로 잡아 줄 목소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어도 앞으로가 심각한 상황이다.
독서란 미래를 보고 심는 나무와 같다. 도서관은 그런 독서의 씨앗을 틔우는 장소이다. 그것이 경제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도서관을 친근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거기서 책도 읽고 놀고 시간을 보내고 가서 졸 수도 있고, 그렇게 쉽게 가고 오는 곳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런 인프라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사회, 정책을 이 문화계의 겨울에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