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알바를 시작하면서 딱 한 가지 간절히 빈 게 있다.
‘제발 내가 일하는 동안 영화 10도 같은 추위가 없기를.’
‘알바 기간 끝나고 눈이 왔으면.’
하지만 기도에 정성이 덜했는지 지난 수요일 새벽, 서울에 첫눈이 왔다. 그것도 많이. 기후변화로 11월에 이런 폭설은 처음이라고 했다. 애고고, 빌었던 게 정반대가 되었다.
눈 내린 새벽의 거리는 멋지다. 고요하고 폭신하고 평화롭고 하얗다. 일하러 가는 길만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이런 감상에 젖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눈이란 ‘재앙’이다. 아니, ‘재앙’이라는 단어는 너무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귀찮음’ 정도인 것은 맞다. 군대 간 아들들이 눈을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라고 한다고 해서 웃었는데, 이제는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특히나 수족냉증으로 남보다 추위를 더 타는 나한테 눈은 전혀 반갑지 않다. 껴입어야 하는 옷도 늘어나고 장갑에 목도리에 두꺼운 양말, 신발도 신경 써서 미끄러지지 않는 밑창으로 골라 신어야 한다. 우유 창고와 학교 실내를 오가다 보면 온도 차이 때문에 콧물도 쉴 새 없이 흐르니 휴지도 챙겨야 한다. 이렇게 짐보따리처럼 채비를 하고 나가면 눈 내린 새벽의 아름다움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행여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온 신경이 발끝으로만 향한다. 저 앞에 버스가 와도 뛰는 건 생각지도 못한다. 아, 눈 내린 아침은 힘들다.
원래 나는 눈을 사랑하는 소녀였다. 눈 내리지 않는 고장이 고향인 사람들 중에는 나같은 사람이 많을 거다. 따뜻한 남쪽 도시, 부산 출신인 나는 서울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겨울에 눈을 볼 수 있다는 거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눈 내린 겨울밤,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나뭇가지는 마치 크리스마스 카드의 그림 같았다. 눈이 내리면 딱히 만날 사람도 없건만 괜히 설레곤 했다. 눈길에 미끄러지기 전까지는.
생각해 보면 매년 한두 차례 빙판길에서 넘어졌던 것 같다. 그것도 세게 넘어졌다. 한번은 신림동 고모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새로 산 구두를 신고 가다가 쫘악 미끄러졌다. ‘어?’ 하는 다음 순간 나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엉덩이가 얼얼했다. 하지만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더 컸다. 누가 보고 있지는 않은지 차마 주변을 둘러보지도 못한 채 주섬주섬 일어나 남은 길을 꾸역꾸역 갔다. 벌벌 기다시피 했다. 더 이상 아름다운 눈 내린 거리가 아니었다. 빙판이 쫙 깔려있는 살벌한 장애물 코스였다. 또 한번은 마트에 들어가려다가 건물 앞 빙판길에서 발라당 넘어졌다. 그때도 만화 주인공처럼 제대로 굴렀다. 매년 아무리 조심해도 한두 번은 꼭 이렇게 빙판길 위에서 나뒹구는 일이 생겼다.
눈이 오면 길은 또 얼마나 막히는지. 차를 몰지 않는다고 해도 사정은 별바나 나아지지 않는다. 도로는 이미 주차장이고 지하철은 미어터진다. 운전자의 입장에서 눈을 만나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아직 초보 운전 딱지를 떼지 못했을 때, 세 살이던 아들을 태우고 서울에서 분당으로 내려가야 하는 때였다. 날이 어둑해지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날이라도 밝으면 눈이 내려도 빨리 녹지만 밤이 되면 얼어붙는다. 게다가 시내 도로라면 차량도 많아서 폭설이 아닌 이상 빙판길이 될 위험이 덜하지만 분당 가는 길은 고갯길이었다. 그렇다고 집에 가지 않을 수도 없어서 조심조심 출발했다. 퇴근 시간이니까 차들이 속도를 못 낼 테니 눈길에서 속도를 낼 필요는 없어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는 이 계산이 맞아들었다. 그런데 터널을 지나 고개를 넘을 즈음, 눈보라가 심해지면서 길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핸들이 헛돌고 바퀴가 미끄러지는 게 느껴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되돌아갈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까딱하면 죽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천만다행으로 아들은 뒷좌석 카시트에서 잠들어 있었다. 아들을 태우고 있으니 어떻게든 집에 무사히 가야 한다는 각오로 핸들을 꽈악 쥐고 앞만 노려보았다. 미친 듯이 움직이는 와이퍼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희미한 앞차의 불빛에 맞추어 브레이크를 밟았다 떼었다. 속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무사히 집까지 도착하기만을 빌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간신히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들은 잠에서 깨어 생생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너무 피곤해서 몸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이런 세월이 쌓이다 보니 이젠 눈이 반갑지 않다. 그래도 첫눈만큼은 반가웠는데, 몇 년 전 고개 꼭대기 아파트에 살 때 폭설에 마을버스마저 끊기고 고립되는 경험을 한 이후로 그마저도 사라졌다. 이제 눈은 미세먼지, 황사와 함께 내가 가장 반가워하지 않는 자연 현상이 되어 버렸다.
싱가포르에 살 때는 싱가포르 사람들은 눈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일년 내내 눈이라곤 구경도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가게에서는 패딩을 팔고 사람들은 짐을 싸서 스키장이 있는 한국, 일본으로 떠났다. 우리가 귀국하기 직전 해, 가든 바이 더 베이에서 인공눈 행사를 했는데, 티켓이 불티나게 팔렸다. 가격도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신문을 보니 사람들이 엄청 몰린 모양이었다. 관련 사진과 영상을 보니 우리나라의 진짜 겨울 눈에 비하면 눈 같지도 않은 인공눈이었건만 사람들은 그마저도 머리에 얹어 보겠다며 기쁜 얼굴로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보니 ‘파삭’ 웃음만 나오는 걸 보니 나도 어느새 속까지 바싹 마른 어른이 되어 버렸나 보다.
어릴 때는 마냥 좋기만 하던 눈과 겨울에 대해 왜 이렇게 시니컬해졌을까? 그때는 부모님의 품에서 겨울을 마냥 즐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추위와 눈을 직접 헤쳐 나가야 해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이 되어 보니 겨울만큼 빈부 격차가 두드러지는 계절도 없다. 넉넉한 사람들에게야 겨울의 추위와 눈은 낭만을 더해주는 요소이지만, 힘든 이들에게 눈은 삶을 힘들게 하는 자연 현상일 뿐이다. 내 처지가 하루 벌어 먹고 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따뜻한 방 안에서 ‘불우 이웃’에 대해 막연히 생각할 때에 비해 직접 그 입장이 되어보니 느끼는 바가 틀린 것은 분명했다. 어쨌거나 출퇴근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눈은 반갑지 않다.
다행히 일을 마치고 나올 때 즈음에는 눈이 많이 녹아 있었다. 부지런히 염화칼슘을 뿌리고 제설 작업을 한 덕분인 것 같았다. 염화칼슘이 환경에 좋은 건지 어떤지 좀 걱정되긴 하지만, 눈길에 미끄러질 걱정은 빨리 접을 수 있게 된 건 좋았다. 이럴 땐 서울에 사는 게 참 편하다. 서울이 아니면 어디서 이렇게 빨리 제설 작업이 이루어질까?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다음 날 또 눈이 내렸다. 기온도 더 떨어졌다. 아무래도 알바가 끝나기 전까지 눈 없는 편안한 길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미끄럽지 않은 신발이나 잘 챙겨야겠다.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