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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Apr 06. 2020

머리는 저녁에 감기로 했다

사소한 변화

 

 인생에는 많은 변화가 생긴다. 여자에게 큰 변화는 아마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난 후의 인생이 가장 큰 변화를 겪는 때가 아닐까.





 아이를 낳기 전만 해도 머리는 항상 아침에 감았다.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향한다. 가는 길에 두 약지 손가락으로 눈 앞꼬리에서 덜렁거리고 있는 작은 눈곱을 쓱 닦아 떼어낸다.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발을 뻗어 휘휘 실내화를 찾아 신고 칫솔에 치약을 푹 짜서 입 속에 구겨 넣는다. 전 날 밤에 물이라도 많이 마시고 잠든 뒷날이면 그대로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며 입 안을 닦는다. 그렇게 한 번에 두 가지 볼일을 끝내고 세면대에서 물 튀겨가며 세수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머리 감기에 돌입한다.



 머리를 감을 때는 최대한 옷을 덜 젖게 하기 위해 윗도리는 바지 속으로 쏙 집어넣어 배바지를 만들고 소매는 팔꿈치 위쪽까지나 재쳐올려 최적의 머리 감기 환경을 만들어준다. 의도치 않는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욕조에 인사하며 머리를 푹 숙이고 샤워기로 긴 머리를 적셔준다. 샴푸는 딱 한 번만 펌핑한다. 그 정도면 거품도 풍성하게 나오고 왠지 과용하지 않아 환경도 보호한 것 같은 기분이다. 샴푸 향을 솔솔 맡으며 시원하게 두피를 긁어주면 머리 감기의 막바지에 다다른다. 다시 샤워기에 물을 틀고 깨끗한 물로 여러 번 헹군다.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은 머리카락에 남은 물기를 꾹 짜서 마무리한다. 수건에 머리카락을 싸서 숙인 허리를 세울 때는 상쾌함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매일 아침의 개운한 의식 같은 것이었다.






 요즘의 나의 아침에는 머리 감기가 사라진 지 한참이다. 물론 기본적인 양치와 세수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아침에 머리 감기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시행하지 않는다. 아침에는 부스스한 머리 질끈 묶고 할 일이 많다. 출근하는 남편 야채주스 한 잔 챙겨 배웅하고 아이 아침밥을 간단히 챙겨 먹이고 등원 준비를 한다.(요즘은 등원을 하지 않는다) 아직 손이 많이 갈 나이라 먹고 나면 아이 양치에 세수까지 하고 로션 발라 옷까지 입히면 등원 차량 맞추기 빠듯한 바쁜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머리 감는 시간은 저녁으로 미뤄졌다.

이렇듯 인생에서는 큰 변화도,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변화도 있기 마련이다. 작은 변화지만 이런 소소한 변화를 알아채고 깊게 생각해보면서 좋은 의미를 찾아보는 것.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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