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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Apr 04. 2020

끝까지 미루고 미루게 되는 일

설거지

 내 하루의 마지막 일과는 거의 설거지다. 쌓아놓고 쌓아놨다 마지막까지 가게 돼서야 만 하게 되는 일거리. 어떤 사람들은 식사가 끝남과 동시에 설거지를 바로 해서 끝내버리는 부지런함을 보이기도 한다. 나도 며칠은 식사 후에 바로 설거지를 해보기도 했지만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설거지는 바로바로 하기가 참 어려웠다.







 아마도 명절증후군이 일상에서도 작용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명절의 며느리들은 앉을 틈도 없이 계속되는 일거리를 하기 바쁘다. 명절 전날부터 시작된다. 아니 사실 심리적인 시작은 일주일은 전쯤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제사상에 올라갈 음식들을 손질해서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허리 펼 시간도 없다. 명절 당일이라고 일이 수월해지는 법은 없다. 전날보다 더 빨리 일어나 창고 구석에 보관했던 제기를 꺼내서 음식을 차곡차곡 정성스럽게 담는다. 담은 음식을 수십 번은 왔다 갔다 나르고 잘 차려진 제사상에 절을 하며 조상을 기린다. 남자들이 제사를 지내는 동안이 약간의 숨을 돌리는 시간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제사가 끝남과 동시에 아침 밥상을 차리는데 차렸던 음식들을 먹기 좋게 차려내는 과정이 있다. 생선은 가시를 바르고 문어는 잘게 자르고 찍어 먹을 초장이며 소금까지 곁들인다. 또 다른 통째로 올려졌던 음식들은 모두 이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정성 들여 차린 음식들을 느긋하게라도 먹고 싶지만 어른들 속도에 맞춰서 먹다 보면 일단 고픈 배나 채우자 싶을 정도로 욱여넣기 바쁘다.


 그리고 대망의 설거지가 시작된다. 밥도 먹고 배도 부른데 앉아서 좀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정말 마지막 일거리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어떤 불공평함에 몸서리를 친다. 포만감을 만끽하며 단 몇 분이라도 널브러져 쉬고 싶은데 쉴 틈 없이 또 마지막 일거리를 하러 일어나야 한다.

 

 사실 이 불공평함은 며느리가 되어 느낀 것만은 아니다. 내가 미혼일 때 손녀로 할머니 댁에 가서 명절을 보낼 때도 엄마의 명절을 보면 매번 느꼈던 불공평함이었다. 엄마는 쉴 틈이 없었다. 음식하고 차려내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먹고 또 치우고 설거지하고 차리고. 계속 반복되는 일거리들. 그 과정들을 군소리 없이 하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도 느꼈던 숨 막힘이었다.   






 마지막까지 숨통을 틔우지 못하고 계속되어야만 했던 일거리의 압박감 때문일 수도 있고 배가 부른데도 모두 다 같이 앉아서 쉴 수 없었던 불공평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가 일상생활에서도 설거지를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에 끝내게 되는 이유가.

 

 내 집에서만큼은 설거지가 바로 해치워야 하는 일거리가 아닌 언젠가 하기만 하면 되면 일이니까. 내 마음이 내킬 때 끝내면 될 일이다. 지금이 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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