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만들어 먹기에는 손이 많이 가서 머뭇거리게 되는 음식이 있다. 소풍을 가거나 큰 마음을 먹어야만 재료 손질을 하면서 흥얼거리며 만들 수 있는 음식, 바로 김밥이다. 솔직히 요즘엔 김밥 땡땡에서 2천 원이면 번거로운 과정 없이 사 먹을 수 있기에 소풍날에도 사 먹기 마련인데 김밥을 집에서 자주 싸 먹게 된 계기가 있다.
코로나가 없던 어느 여름 주말이었다. 신랑과 밥을 누가 하냐는 문제로 투닥거리다가 홧김에 아이와 신랑을 집에 두고 앞동 친한 언니네로 피신을 갔다. 형부는 출근하고 언니랑 아이 둘은 점심으로 김밥을 만들어 먹으려던 참이었다. 말이 아이들과 함께 김밥을 만든다였지 모든 준비는 언니 혼자 하고 있었다.
밥을 푸고 있는 언니 뒤쪽으로 김밥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단무지와 우엉은 국물을 쪽 뺀 내용물만 있었고 달걀지단과 김밥용 햄, 집에 있어서 넣었다는 고급진 크라비아까지 한 번씩 볶아진 후였다. 김밥 재료들을 찬찬히 보다가 자연스럽게 가스레인지 프라이팬에 올려진 당근채 앞으로 갔다.
"언니~ 이거 볶아?"
"아니~ 그거 거의 다했어~ 그거 말고 여기 밥에 간 좀 해주라~"
"간? 나 김밥 안 써봐서 모르는데~"
"소금이랑 통깨 넣고 섞어서 맛보고 간간하면 돼~"
"으응~"
넓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수북이 담긴 밥을 받아 들고 언니가 준 소금통을 번갈아 보며 얼마나 넣어야 할까 생각했다. 찰나에 또 벨소리가 울렸고 김밥 준비를 도울 지원군이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또 다른 언니는 옷을 벗자마자 내 옆으로 불려 왔다.
"언니~ 김밥 간 해야 하는데 소금 얼마나 넣어?"
"소금? 일단 넣어봐, 내가 멈추라고 해볼게"
툴툴툴.
"어어 그만~ 섞어보자"
밥 간이 맞춰지고 나니 김밥 싸는 일이 남았다. 집주인 언니의 평온한 주말에 들이닥친 불청객으로서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방문객들은 머리를 맞대고 싸기 시작했다.
"일단 발 위에다 김밥 김을 놓고 밥을 한 주먹 올려서 얇게 펼쳐봐~"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어 맞아~~ 잘하는데? 한 번에 어떻게 밥 양을 그렇게 잘 맞췄냐? 그러고 재료 하나씩 넣고 싸는 거야~"
"어어 알았어~ 해보지 뭐~"
언니의 지시에 맞춰 밥을 펼치고 볶아진 재료들을 하나하나 올린 뒤 앞쪽에 있던 김밥 김을 재료가 놓인 끝부분에 올려 휘리릭 말았다. 둥글게 말린 김밥을 발로 한번 더 감아서 두 손으로 돌리며 힘을 줬다. 단단하게 만든 뒤 발을 펼쳤더니 도톰하고 먹음직스럽게 말린 김밥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너 이거 한 번도 안 말아본 거 맞아?? 너~~ 무 잘 마는데?? 나도 이렇게 안 나와~~"
"뭐야~~ 진짜야? 나 계속하라는 거 아니고? "
옆에서 우쭈쭈 해주는 언니들의 격려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나는 제법 속력까지 내며 10줄을 거뜬히 말았다.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남은 김밥을 집에 가져가라고 싸준 덕에 신랑과 화해까지 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집에 먹을 게 없다 싶으면 김밥을 만다. 기분 따라 참치 김밥이나 돈가스 김밥을 말아먹기도 한다. 적성을 찾은 마냥 다양한 재료를 활용할 수 있었고 빠른 시간에 김밥을 만들어냈다. 집에서 만들면 김밥과 김치만으로도 한 끼 정성을 인정받게 되는 음식. 이번 주말에는 어묵 김밥을 말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