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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n 21. 2019

혼자 여행한 '서울국제도서전'

읽고 쓰는 여자 '서울국제도서전 다녀오다'

일어나 남편에게 전화했다. “이틀 째 글이 잘 안 나와. 오늘 글 써야 할 것 같은데. 가지 말까?” “미루지 말고 그냥 오늘 다녀와. 그럴수록 나가 주는 게 훨씬 좋아. 가서 많이 구경하고 아이디어 얻어서 나한테 얘기해줘!” 그래, 혼자 하는 글감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몸이 가뿐해졌다.


잊고 있었던 감성을 끄집어낼 수 있던 값진 시간이었다. 활자가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며 내게 말을 건다. 천장에 매달린 책의 구절구절이 ‘우리 모두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낼 수도 있음을 자각'하라고 말하고(민음사), 91도씨로 책 속의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문학 자판기에게 위로를 받기도 했다. (하단의 구절은 문학 자판기를 인용했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신간도서라는데 출간되자마자 사 볼 예정이다.)


그럴싸한 이야기로 남을 현혹하는 기술을 오래 연마한 이야기꾼을 현혹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들에게 그럴싸한 이야기의 재료와 그 이야기로 메울 수 있는 빈틈을 함께 내주는 것이다. 픽션에 가장 깊게 사로잡히는 사람은 바로 그걸 쓴 작가다. - 장강명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책도 예뻐야 살아남는다.


책도 외모로 판단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해 8만 종의 책이 탄생할만큼 출판시장은 치열한 각축적이 펼쳐졌다. '외모' 곧 겉표지로 사람의 마음을 끌지 못하면 선택받지 못한다는 압박감의 결과일까. 통일성 있는 디자인. 직관적인 제목. 민감한 주제. 특히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은 귀여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이목을 끄는 부스였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건 다루는 주제가 다양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남녀 상관없이 젠더 감수성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책과 라이프스타일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특색을 보여준 도서전이라고 평가한다.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덕분에 볼거리가 다채로웠다. 먼저 대전 대표 빵집인 성심당이 참여했다. 전시관 중앙에 자리를 차지해 빵 냄새를 솔솔 풍기고 있는 이유가 뭘까? 과학 교수인 빠나나박사(이기찬교수), 성심당 그리고 이유 출판의 합작 프로젝트의 결과로 지난해 그림 동화책을 출판했다. 빵 한 조각이 주는 따뜻한 의미를 생각하며 성심당 탄생 일화를 동화로 만든 결과물이라고 한다.


모든 라이프스타일을 볼 수 있는 책은 삶이다.


의식주중에서도 '식'인 먹는 것은 우리에게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귀한 녀석이다. 도서전 안에서 요리인류라는 오픈키친을 기획한 <누들로드>의 이욱정 PD 강연, 장진모셰프, 커피강연 등 요리와 책의 독특한 만남을 만들었다. 이렇게 모든 삶에 책을 녹일 수 있다는 일본의 츠타야서점, 을지로 아크앤북과 같은 시도처럼 이는 대중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출판 생태계에 새로운 '출현'이 많아졌다. 독립출판과 독립서점의 생산자는 바로 우리 개개인이 되었다. 그리고 소리 내지 않았던 문화 주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으로 페미니즘, LGBTQ 관한 독립출판물인 귤프레스, 움직씨, 세컨드를 볼 수 있었다. 또, 디자인, 사진, 영화와 같은 특색 있는 독립서점의 참여도 눈에 띈다. 더 나아가 책을 읽는 방법이 눈으로 읽는 데서 귀로 듣는 행위로 변함에 따라 오디오북이 출현했다.


꼭 들러서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확인해 보자.


공공도서관 역시 책만 읽는 공간을 넘어서 쉼의 이미지를 주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서울시 공공도서관 부스에서는 각 지역별 공공도서관의 위치와 개수, 그리고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알아볼 수 있다. 자서전 만들기, 독립 출판하기와 같은 퀄리티 높은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공공도서관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걸어가고 있었다.


책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스타트업의 출현도 눈에 띄었다. 블라인드 데이트 북 전문 서점인 '꿈꾸는 별 책방'은 매일매일 그날 태어난 작가를 소개하고 그 책을 만날 수 있도록 책에 각 날짜를 테이핑 해두었다. 나 역시 자연스레 내 생일의 작가를 찾아보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 ] 문답은 콘텐츠 퍼블리싱을 진행하려고 시도하며 이번에는 [죽음] 문답으로 내 죽음에 대해 고찰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글쓰기를 유도했다.


모든 사람의 가능성을 끄집어낸 의미 있는 플랫폼, 브런치


가히 비교 불가능한 의미 있는 출현은 브런치였다. 브런치는 모든 대중이 '작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주는 플랫폼이다. 출판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준 게 브런치라고 생각한다. 나의 삶이 타인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작가의 서랍전에서는 브런치 대표 작가 100명을 선정해 각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번 도서전에서도 감각적인 디자인과 대기해서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며 이목 끄는 기획력을 보여줬다. 이렇게 브런치는 작가인 내게 꿈과 목표를 주었다. 언젠가 100인 안에 더 나아가 브런치북을 만드는 날을 꿈 꾸며 책 한 권을 지긋이 바라보고 돌아왔다.


브런치가 추천하는 작가님 100분 글 열심히 읽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출판의 자유 시대가 도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뜻깊은 계기였다. 구석에 마련된 특별전시 <금지된 책: 대나무 숲의 유령들>은 금서에 관한 이야기들을 미술과 함께 전시했다. 금서란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 등의 이유로 권력에 의해 제작과 배포가 금지되었거나 회수된 책을 의미한다. 금서로 지정된 책은 그만큼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만한 책이 많았다. 금서 중에는 내게 '자유'에 대한 의미를 강하게 깨우쳤던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도 있어서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호사를 누린 여행이었다. 단지 걸었을 뿐인데 자연스레 좋은 책을 만나고 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렇게 걷고 또 걷다 보면 내 길이 만들어지고 또 다른 가능성이 출현하리라 기대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독립서점을 만들고 싶다. 이 공간에 오는 모든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와 내 꿈은 더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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