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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n 22. 2019

오늘의 숙제

읽고 쓰는 여자

 

토요일 아침이 되면 목소리가 잠깐 휴면 상태에 빠진다. 저학년 아이들과 토론 논술 수업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자꾸 집중의 박수로 환기시켜주지 않으면 옆으로 앉았다가, 손을 꼼지락대거나. 친구를 힐끔 쳐다보는 등 수 만 가지 딴짓을 시전 해주신다.


고학년 친구들과는 달리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책 읽는 즐거움을 주는 게 수업의 목적이다. 내용은 쉽고 직관적인데 교훈을 줄 만한 책이 어디 없을까. 수업을 끝내고 도서관 책장을 기웃거렸다. 들어봤다거나 내가 읽어 본 그림책 위주로 손이 갈 수밖에. 그래서 집어 들게 된 책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지금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인 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른이 된 우리들은 한 번쯤 읽어봤을 스테디셀러 그 책. 아이들에게 물었다. “읽어 본 사람?” 세 명 빼고 다 읽어본 책이란다. 책을 읽어주기 전 살짝 긴장했다. 많은 아이들이 내용을 알고 있는데 집중력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표지를 넘긴 이후 아이들은 내 입과 책의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극강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자꾸 주기만 나무가 안타까웠을까? 아이들은 탄식하며 “왜 자꾸 주는 거야” “저러다가 죽겠어” “아이고 아프겠다”라고 말했다.


사실 아이들과 책을 읽기 전, 집에서 남편을 앞에 앉혀두고 책을 읽는다. 또 눈물이 터졌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모두 다 소년에게 줘 버려서 아무것도 줄게 없는데, 소년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한다. 모든 게 다 자신의 잘못인 것 마냥.


왜 엄마와 아빠가 생각 난 걸까. 딸을 위해 모든 걸 기꺼이 내준. 아무것도 없는데 더 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던. 결혼 전 거실에 나를 앉힌 두 분은 자신들이 더 많이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단다. 결혼자금에 보태 쓰라며 주신 돈은 아직도 쓰지 못하겠다. 자식이 부모님에게 첫 용돈을 드리면 쓰지 못한다 하시는데, 어떤 이유인지 알게 됐다.


몸이 다 잘려나가 밑동만 남았어도 잘려나간 몸을 길게 늘여 앉아 쉴 자리를 내주던 나무. 아이들과 책 줄거리를 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우리 가족이 내게 주는 건?” 많은 아이들이 사랑이란다. 그래도 사랑받는 것 같아 안도했다.


다음 질문은 이거였다. “우린 가족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 아이들은 사랑에 이어 나라고 한다. 그냥 나 자체를 줄 수 있다는 거다. 방법이 궁금해서 물었더니 그저 예뻐해 주면 된단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나를 예뻐하듯 가족도 예뻐해 주면 되는구나.


나무를 꼭 안아주는 순수했던 소년.


가족에게 안아주면서 사랑한단 말 하기. 아이들에게 오늘 내 준 숙제다. 나중이 아닌 오늘 당장 하라고 말해줬다. 어린 시절에 사랑한다는 표현이 익숙해지지 않으면 가족끼리 표현에 소원해지기 쉽다. 결혼하면서 제일 아쉬운 건 더 많이 표현하지 못했던 거다. 난 사랑한다는 말도 서투른 데다가 자꾸 소년처럼 멀리 가 버린다. 그리고 꼭 내가 필요할 때만 찾아가는 못된 버릇이 있다.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이 불편할 수도 있겠단 생각으로. 나무가 보고 싶다 할 때 한 번은 가야 하는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는 자발적으로 나무 역할을 한다. 우리가 저녁을 먹고 집에 와 맥주를 먹고 있는 그 시간에도 집에 있는 냉장고를 뒤집어 탈탈 털어놓으신다. 갱년기 이후에 반찬 하는 걸 싫어하셨던 엄마는 딸 분가 이후로 열심히 반찬을 하기 시작하셨다. 지난번 파김치에 이어 이번엔 물김치. 그리고 나물들.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화법이 이젠 귀에 쏙 들어온다. 심혈을 기울인 반찬이 틀림없을텐데도 '고사리는 이번에 좀 짜더라' '이건 좀 싱거워서' 부족한 부분만 꼽아 말씀하신다. 뭘 해줘도 엄마 반찬이 맛있는 우린 잘만 먹는데 말이다.


집에 와 냉장고를 채워 넣고 문을 닫으며 엄마에게 전화했다. 반찬 잘 먹겠다고 말하며 삼 개월 만에 말했다. 엄마 사랑해. 갑작스러운 돌직구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던 엄마는 급하게 전화를 끊으신다.


소년 때문에 자신의 몸이 잘려나간 나무는 무슨 말를 했는지 아는가. 나무는 줄게 없어서 그저 미안하단다. 밑동만 덩그러니 남아있던 그 나무는 짧은 몸을 길게 길게 늘여 노인이 된 소년이 쉴 수 있게 의자가 되어 준다.


앉아서 쉬도록 해.


다 큰 어른이 되면 엄마에게 짐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웬걸 나이든 엄마에게 오히려 더 큰 짐이 되고 있다. 매일이 새로운 날이고 하루가 주는 의미가 다르다. 나이든 노인이 돼서도 엄마에게 기댈 것 같은 이 철부지 같은 자식은 엄말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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