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예지 Aug 27. 2019

언니 잘 지내지?

<캠핑클럽>을 보며 떠오른 그 사람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 친구 따라 처음으로 아이돌 빠순이가 됐다. 그리고 네 명이서 그룹을 결성했다. 핑클. 1세대 아이돌이던 그녀들은 나의 선망의 대상이자 언니들이 되었다. 내 남자친구에게를 시작으로 루비까지 1집부터 4집까지 그녀들의 짧았던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저장돼 있다. 그녀들의 노랫말은 나의 연애의 로망이자 여자로서 내가 그려나갈 그림이기도 했다.


그런 언니들이 <캠핑클럽>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일주일 동안 함께 캠핑을 다니며 묵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처음엔 친구 때문에 좋아했지만 나중엔 진심으로 그녀들을 응원하는 팬이 됐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아이돌과 달리 그녀들은 ‘척’을 하지 않았다. 물론 모습 역시 충분히 예뻤지만 그녀들은 솔직했다. 예쁜 척을 하지 않고, 꾸미는 척을 하지 않는 여자 아이돌이란. 그래서 다른 아이돌에 비해 남자 팬이 적은 편인 데다 이런 모습 때문에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리기도 했다. 정제돼 있지 않은 감정표현으로 대중은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다' 혹은 '어색해 보인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난 그들과는 반대로 가감 없고 스스럼없이 서로에게 독설을 날리고 하고 싶은 말하는 그녀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멋있다.


첫 화만 시작했을 뿐인데 그녀들의 모습은 잊었던 나를 찾아내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내 남자친구에게'를 틀고 캠핑지를 향해 출발했다. 한 소절 정도 지났을 때쯤, 주현 언니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물과 함께 나도 코끝이 찡해졌다. 아주 오래전 함께 했을 그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훌쩍 시간이 지난 지금 그들의 모습에 또 왈칵했을 그녀의 마음을 나도 십분 공감했다.


자갈밭에 앉아 그녀 둘은 왜 저렇게 서럽게 울음을 터뜨린 걸까 @JTBC 캠핑클럽


어릴 땐 뽀얀 피부와 큰 눈을 가진 유리 언니와 진 언니가 예뻐 보여서 친구들과 그 둘 담당을 맡겠다며 친구들과 한참을 싸웠다. 아쉽게도 난 그때부터 까무잡잡한 피부와 작은 눈을 가졌었다. 그래서 내 담당은 효리 언니였다. 좀 서러웠다. 내 외모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며 거울 속 나를 참 원망 많이 했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효리 언니는 남자를 10분 만에 유혹하는 매력적인 여자가 되었고, 지금은 삶에 초연한 요가러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지금은 효리 언니를 제일 좋아한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 시절 리더로서 부족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솔직함. 여느 사람들은 가진 게 많아서 여유로운 것이라고 말하지만, 가진 게 많던 적던 모든 사람에겐 나름의 걱정거리가 있다고 믿는 내게 그녀 역시 마음을 가꾸며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이십 대 시절 나의 언니에게


나의 어린 시절 언니는 핑클이었다면 이십 대 시절의 언니는 나와 일 년을 함께 동고동락한 사이다. 우리의 첫 만남은 내가 막 취업 준비생으로 넘어가기 목전의 시기였다. 공식적인 첫 조우 때 나와의 만남에서 강렬한 첫인상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아마 그 당시 어필하고 싶었던 마음에 몸이 책상에 반 정도 나와 걸터 있는 것과 동시에 현란한 손동작으로 그녀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도 했다.


첫인상처럼 우린 그렇게 강렬한 만남을 가졌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날씨와 별개로 매주 목요일 저녁은 그녀와 나 그리고 나의 친구들과 만남이 약속돼 있었다. 매주 월요일, 우리는 독자들과 약속을 지켜야 했다. 그렇게 주간지 기자님과 학생 에디터로 무려 1년 동안 함께 걸어갔다.


대학내일은 학교 중앙도서관과 정문에 월요일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북대언니(전북대 블로그)

대학생이라면 도서관 선반이나 학교 로비에서 월요일에 봤을 법한 잡지. 그렇다. 난 대학내일의 학생 에디터였다. 고학년이 되어 안 좋은 이유 딱 한 가지는 월요일에 '대학내일'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매주 월요일에만 배포되는 그들은 화요일이 되어 학교를 와도 어디에도 한 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신입생부터 꿈꿔왔던 대학내일의 에디터가 됐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 너무 자랑스러웠다.


처음엔 그저 손에 잡히는 실물 ‘잡지’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된 것이 회의를 거듭할수록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변해갔다. 매 회의 때마다 우리는 목청껏 개인적인 의견을 표출했고 가감 없이 타인의 비판을 수용했으며 그렇게 조금씩 성장했다.


그만큼 팀의 합이 잘 맞아서 일수도 있겠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또 '사람'이었다. 나의 이십 대 시절 언니. 그 언니는 딱 나보다 열 살이 많고, 화장기 없는 웃는 모습으로 리포터들에게 매일 다른 에너지를 발산해주셨다. 비가 오는 날이면 뒤에서 묵묵히 우산을 펴주고, 말 못 할 고민이 많다 싶으면 아이스크림 하나를 건네주는 센스 넘치는 언니 덕에 우린 매주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확실한 건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는 거지


그렇다고 우리가 자주 만나거나 매일 연락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다. 게다가 내가 일방적으로 보고를 하거나 분한 일이 있으면 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른다. 침 튀기며 흥분하는 내 손을 잡고 언니는 언제나 그렇듯 모든 빗장 문을 열고 다 들어준다.


출근을 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언니에게 연락했다. 이번 주에 당장 만나자고 말했다. 바쁜 언니와 약속을 잡기 위해선 한 달 전부터 약속을 잡아야 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이상한 부름에 언니는 곧바로 응답했다. "알았어. 홍대입구역 8번 출구. 7시."


가만히 책을 읽다 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목이 보이지 않도록 표지를 뒤집어 두고 언니를 맞이했다. 보자마자 내 눈을 심상찮게 바라보며 껴안아주던 언니가 돌연 책 제목을 크게 말하며 얘기한다. "네가 이런 책은 왜 읽고 있어?" 회사에서 반강제적으로 읽으라고 사 준 '조직에 잘 적응하는 법'을 주제로 한 책이었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언니의 품 안에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서러울 정도로 울다 그쳤을 때쯤, 언니와 나의 대화는 이어졌다. 입사한 지 딱 8개월밖에 안 된 내가 왜 이렇게 된 건지 언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밝고 명랑하던 나의 에너지를 뺏어간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계속 버티고만 있는 건지. 있었던 수 십 가지 일 중에 고작 5가지만 말했을 뿐인데 언니의 얼굴은 붉어졌다 파래졌다 가만히 있질 않았다.


그정도면 충분해, 그 정도면 됐어 @JTBC 캠핑클럽

그다음 날, 난 퇴사를 결심했다. 다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고, 심지어 내 말도 듣지 않았는데 그녀의 '이제 그만해. 그 정도면 됐어'라는 그 한 마디로 용기를 얻었다. 게다가 그녀는 구체적이고 정확한 방법을 알려주며 나의 새 삶을 응원해줬다. 중요한 순간이 닥칠 때마다 내 곁에서 응원해주는 그녀에게 나도 작은 보답을 하고 싶었다. 몇 번이고 뭘 해드리면 좋겠느냐 물었던 기억이 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한결같이 대답했다.


"내가 받은 것보다 조금만 더 너의 동생들에게 해 줘.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꽤 오랫동안 그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내 동생들에게 더 애정을 담아 사랑해주고 있다. 언젠가 그녀에게 동생들의 성장을 얘기할 날을 학수고대하며. 그리고 나의 에너지가 원상 복귀되어 세상에 더 잘 쓰일 준비가 됐음을 이제 말하고 싶다. 언니, 잘 지내지?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드라마 속 여주인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