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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l 17. 2019

어느 드라마 속 여주인공

또 오해영과 검블유 그 사이

아직 대학생 같다는 말은 여전히 기분이 좋다. 미소 지으면서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고 말한다. 이십 대 끝자락인데도 청바지를 입고 백팩을 메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난 딱히 이십 대 초반과 별반 다른 게 없다. 그저 시간이 흘렀을 뿐.


나 다움을 잃지 않는 것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는 '멀고 먼' 미래 얘기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젠 그 미래가 내 앞에 떡하니 놓여있음을 알게 됐다. 드라마 속 <또, 오해영>을 마주하게 됐다. 직장인의 온갖 애환과 가지 각색의 고민들을 '넋두리'하듯 풀어내는 그녀의 내레이션은 이제 내 마음을 콕 찌르기에 이른다. 내가 몇 살이더라? 이런, 말하기 싫다.


결혼에도 실패하고, 회사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던 그녀는 또 다른 '해영'이와 비교되지만 '그녀 다움'을 잃지 않는다. 뻔뻔하게 누구나 나이 듦을 인정하고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지만 '나는 나다'라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서른을 목전에 앞둔 난 위로를 받는다.


표정이 수 십 개였던 해영이. 왜 이렇게 애잔했던지. ⓒ tvN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다. 그런 의미에서 해영이는 철저한 주인공이었다. 좌절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꺼이꺼이 울고 훌훌 털어버리고 나면 '본연의 나'로 돌아갈 줄 아는 여자. 멋진 여주인공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고, 실수투성이에 사랑에 매일 상처 받을지라도 나다움을 잃지 않는 여자.


화장을 지워 일상 속에 고단했던 나를 벗어던진다. 얼굴 반만 한 안경과 운동복 바지를 장착한다. 그러곤 앉은뱅이 좌식 테이블 앞에서 무릎을 껴 앉고 맥주 캔을 딴다. 안주는 사치일 뿐. 욕 한 바가지 퍼부을 팀장이 내 안주거리기 때문이다.


그 나이 먹도록 뭐했어


모두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어리다. 같이 늙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내 나이는 부끄러움의 또 다른 이유다. 지금껏 돈도 몇 천 못 모으고, 볼품없는 이력에다가, 방황만 해대는 탓에 자신이 없는 건가. 걱정하는 친구들에겐 누구보다 당당하게 '난 내 페이스에 맞춰 살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그저 열심히 살았다. 덜어내지 못하고 더해내는데만 급급했던 나는 목적지향적인 인물이었다. 소중한 걸 지키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목적에 걸림돌이 될만한 상황이 있다면 바로 저 멀리로 던져버렸다. 변명과 회피를 하기엔 이미 나이가 들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나이 먹도록 뭐했냐는 말 그리고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내 처절한 몸부림과는 달리 잘만 사는 여주인공도 있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의 주인공인 배타미(임수정)는 회사가 자신을 버려도, 스스로 살 곳을 찾아 훌훌 떠나며 사랑하는 남자와 능동적인 관계를 맺는 여성이다.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여성들은 제 각기 꿈꾸는 삶을 찾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히며 처절하게 살아간다.


'그 누구도 지지 않을 거야'라는 포스를 뿜어내는 욕망의 여신 3인방. ⓒ tvN


나도 여느 여주인공과 다르지 않아


해영이에게 측은지심을 느꼈지만 지금 난 배타미에게 또 다른 연민을 느낀다. 드라마를 보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내가 욕망에 눈이 멀면, 왜 안 되는데?", "그건 네 룰이고 나한테 강요하지 마. 나한텐 그럴 룰 없으니까."


회사를 다니는 내내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말. 그렇게 발로 차 버리고 싶었던 말이 많았지만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녀들처럼 말을 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말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하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이유. 곧, 생존으로 인해 난 비굴해지기 일쑤였다.


세상은 내게 용기 있다고 한다. 결혼을 해 딸린 식구가 있는데도 하고 싶은 걸 선택한 용기 있는 여자라는 거다. 아마 검블유의 그녀들과 비슷한 선택을 한 것도 같다. 내 욕망에 눈이 먼 것이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모두의 룰이 내 룰이 될 수 없다는 신념 정도?


결국 나도 여느 여주인공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나 다움'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 나이 먹도록 뭐했다는 말속엔 '우린 이렇게 살아야만 해'라는 룰이 있다. 그래서 난 내 룰을 만들기 위해 앞서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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