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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l 12. 2019

완벽주의자의 변명

일주일 가량 글 업로드가 없었던 이유

마감기한 오분을 남겨두고 지원서를 넣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사실 한두 번은 마감기한을 넘기고 메일을 보낼 때도 있었어요. 더 나은 자기소개서를 쓰고 싶었거든요. 자꾸 미루고 미루는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 찾아봤는데 비슷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무슨 일 있어? 왜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는 거야?


절친한 친구들에게 몇 차례 톡이 왔다. 내가 쓴 글을 보며 삶을 묵묵히 응원해주는 그들의 마음이 고마웠지만 한 편으론 부끄러웠다. 글 쓰겠다고 프리랜서 선언한 놈이 독자와의 약속을 우습게 여긴 것 같았다. 이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 그녀들에겐 이렇게 답했다. “조금 더 완벽하게 쓰고 싶었어. 내 글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거 있지.”


분명 핑계다. 10년 차 작가도 아니고 더더구나 글을 따로 배운 인물도 아니었다. 완벽주의라는 말로 나의 습관을 합리화했다. 완벽주의자는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을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완벽하게 해낸 게 아무것도 없는데 완벽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게으름을 좀 피워봤습니다만


더 완벽해지기 위해선 게으름이 가끔 이로울 수도 있다고 한다. <오리지널스>의 저자 애덤 그랜트는 우리가 어떤 일을 주어진 시간보다 빠르게 끝내면 '끝내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다 보니 창의적인 통로를 일찍이 차단해버리고 기존 아이디어에 묶인다는 것이다. 정반대로 생각해보면 빠르게 마감을 해버리면 그만큼 생각할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만약 다른 일을 하다가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도 있어 이를 접목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불 위에서 책을 읽고 또 읽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분을 '휴지 상태 네트워크' 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고 이름 붙인 그들은 이와 관련되는 부분이 깊은 사고, 자아 성찰 등 창의성을 발현하는 곳이라고 한다. 즉, 우리가 멍을 때리고 게으름을 부릴 때 뇌는 더 창의적이 된다는 의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완성한 시간은 얼마인지 아는가? 자그마치 16년이란다. 그의 성취만큼이나 게으름으로도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게으름과 낙서 때문이다. 그 안에는 과학, 수학, 그리고 예술 외에도 헬리콥터와 같은 계획도 담겨있었다고 한다. 혹자는 그가 게으르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명작을 만들었을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게을렀기에 창의적인 사고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가?


열심히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멕시코에 이어 OECD 국가 중 3번째로 높은 근로 시간을 나타내는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근면성실'한 사람을 위한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몇 해 전까진 당연한 미덕인 줄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할수록 회사는 더 많은 일을 내게 던져주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느꼈던 가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목적 없는 열심히는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고 해야 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채로 기획회의를 들어가면 아무 의미 없이 회의가 끝났다. 동기부여가 빠진 열심히는 내게 그리고 우리 팀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바꿔 말하면 게으름 피우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게으름 피우는 게 나았다. 멍 때리며 뇌를 쉬게 해 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일상을 포착하는 여유를 줌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며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필요성을 느끼며 스스로 알아서 하는 힘이 생길 가능성도 존재한다.


걸어 다녔더니 글감이 생겼다


기획 회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환승을 해야 했다. 한 번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주변 도서관이 눈에 밟혔다. 걸어서 십 오분 정도 걸렸다. 고가 아래를 지나 학교 주변을 따라 걸었다. 시곗바늘에 맞춰 나를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하다 보니 생각할 틈이 부족했구나를 인지하게 됐다.


산책로를 걷는 것도 새로운 길을 걷는 것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 번 걸어보자.

허투루 쓰는 빈 시간을 없애기 위해 책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무게를 덜어내고자 전자책을 사고 나니 활자와 함께하는 시간은 더욱 늘어났다. 그 대신 주변을 둘러보는 데 인색해졌다. 글 쓰기를 위해선 자연과 일상을 잘 관찰해야 하는데 정작 이 작업이 부족했다. 책을 읽어서 소스를 얻게 되면 자연스레 글 쓰는 시간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진짜 좋아하고 원하는 것은 도처에 널려있었는데 말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걸었더니 쓰고 싶은 게 보였다. 사소한 자극들이 일상에서 던졌던 질문들에 답하기 시작했다. 걷고 또 걸으며 휴식을 취하고 나니 좋은 점이 생겼다. 쓰고 싶어 진 것이다. 반복되는 삶에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열심히에 지쳐버렸다면 걸어 다니며 가만히 주변 자극을 즐겨보는 건 어떨지. 지금까지 완벽주의자의 완벽한 변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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