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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an 02. 2020

이 땅의 모든 장성규에게

그와 우리의 2020년이 더 기대되는 이유

나는 장성규를 좋아한다. 사실 처음엔 정말 싫어서 브라운관에 나올 때마다 채널을 돌렸다. 아나운서라는 사람이 나와서 '타임마~'를 외치며 JTBC의 <아는형님>을 활보할 때, "저 듣보잡은 뭐야. 왜 저래."라고 했지만 신기하게도 점점 그의 개그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뻔뻔한 그의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카타르시르를 느낄 때쯤 그는 '프리'선언을 했다.


뻔뻔한 모습과 같게 그는 프리선언의 이유를 딱 한 마디로 정리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랜다. 그 말을 들으면서 속물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처럼 안티팬이 생기면 어쩌려고 하지 심지어 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의 행보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건.


장성규를 일로 만나면서부터


성실함의 대명사 유재석은 나 말고도 대한민국 전 국민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다. 어느 채널에서는 한결같은 열심히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다. 요즘 들어 그는 새로운 도전을 자주 하고 있는데, 가장 놀라웠던 건 <일로 만난 사이>를 하며 또 몸 쓰는 일을 한다는 거였다. 역시 유재석 엄지를 치켜세우며 그의 <일로 만난 사이>를 4회쯤 봤을 때였다. 5번째 게스트로 장성규와 한혜진이 버섯농장으로 함께 일로 만난다고 했다.


일로 만난 그들은 버섯농장에서 버섯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나무를 요리조리 돌리며 힘을 쓰고 이동하던 그 시간, 유재석은 게스트 '장성규'에게 묻는다. 프리선언을 한 이유에 대해. 별 기대 없이 듣던 그의 말에 맥이 툭하고 빠져버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미워했던 나는 도리어 미안해졌다.


"도전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어요. 5년 안에 부모님 빚을 갚아드리고 싶어요."


사람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를 판단하게 된다면 아주 단순하게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는 걸 분명 알고 있었다. 평상시에 나는 맥락을 배제한 채 그의 말과 행동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있었다. 목부터 귀까지 빨개진 채로 화면 속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팬이 되리라 다짐했다.


생각해보면 <일로 만난 사이>보다 훨씬 전부터 장성규는 <워크맨>을 통해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고 오히려 나와 더 가까운 보통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로 만나고 있었다. 자유자재로 선을 넘나들어서 아주 가끔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따뜻함을 가진 그의 모습 덕분에 선넘규임에도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올 한 해를 바쁘게 보낸 그는 프리 선언 이후 평균 7개 정도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단다. 기대했던 것보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탓에 금방 떨어질까 봐 걱정인 그에게 유재석은 '올라가는 것도 의도한 게 아니듯 꺼지는 것도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라'며 조언했다.


이 땅의 모든 장성규에게


나의 연예인 장성규는 MBC 연예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다른 사람의 수상소감보다 묵직했던 건 나만의 연예인이라서가 아니라 보통 사람 장성규가 이 땅에 있는 모든 장성규에게 하는 말 때문이었다. 


스물아홉살이 다 되어 준비해 서른아홉에 빛을 봤다던 그.


"사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장성규란 사람을 꽤 하찮은 사람이라 여겼고, 무시했던 시간이 길었다. 이제 와서 과거의 제가 무시했던 장성규에게 사과하고 싶다"라며 그는 "성규야 미안하다. 생각보다 너는 괜찮은 친구였는데 내가 너무 무시했던 거 같다. 지금까지 잘해줬고 수고했다. 네가 나여서 너무 좋아."라고 말했다.


가슴이 뜨끈했다. 매일 다른 사람들에겐 쉽게 사과했지만 제일 많이 상처를 주는 대상인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사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나는 나에게 가혹했을까. 그게 뭐라고 나는 왜 이렇게 나를 무시했던 건지. 


돌아보면 매 해 후회 투성이의 한 해였다. 내 자존심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부려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딱 한 번, 2019년은 내 마음대로 해 본 시간이었다. 결혼의 결자도 꺼내지 못할 것 같았던 나와 나의 남편이 13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에 책을 두 권이나 발행했다. 


그러면서 느낀 건 하고 싶은 거 할 만한 세상이라는 거였다. 먹고 사느라 포기해야 했던 꿈들을 꿈이 아닌 먹고사는 일로 바꾸기 시작하자 밑그림이 그려졌다. 의외로 세상은 자존심 부릴만하다. 물론 밑그림 그렸던 걸 다 완벽하게 마무리해내진 못해서 아쉬움이 남긴 하다만, 미완의 그림은 또 새로운 2020년도에 완성하면 되니까.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였는데, 지금까지 잘해줬고 수고했다. 네가 나여서 너무 좋아."


이 땅에 모든 장성규에게. 그리고 이 땅에 꿈을 꾸는 모든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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