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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an 30. 2020

아무 노래의 신드롬의 이유

결국 우린 좋은 무언가를 추천받고 싶었나 봐요

듣던 노래만 듣던 내가 오랜만에 신나는 노래를 차트에서 발견했다. 믿고 거르던 차트였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에 차트 조작이 나온 이후로 차트의 분위기가 한결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일상생활은 꽤나 단조로웠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음악 탓도 좀 컸던 것 같다. 몇 개월 동안 매일 듣던 노래만 들었기 때문이다. 차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그랬고, 점점 요즘 나오는 노래가 나의 연령대와는 맞지 않다는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90년대 아니면 00년대 노래를 들으며 “역시 옛것이 최고야.”하며 박자를 맞추고 춤을 춰 보았지만 점점 지루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제부터 알고리즘을 믿을 수 없게 된 걸까


차트 1위부터 10위까지 노래를 믿을 수 없겠다고 생각한 건 2년 정도 된 것 같다. 물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의구심이 들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가수가 갑자기 눈 앞에 보이고, 또 어디서 들어봤던 새로운 노래가 차트에 올라갔다. 내 남자 친구는 습관처럼 말했다.


“그냥 내가 들으라는 거 들어봐.”


그 역시도 꽤 지쳐있었던 것 같다. 음악을 하던 그는 열심히 하면 자기도 차트에 올라가 빛을 볼 수 있을 거라고 10년 전 대학생 때는 그렇게 말했다. 분명. 근데 점점 그 말은 입 안으로 숨어들었고 생태계를 모르던 난 그의 자신감이 떨어진 것 같아 차트가 아니라 새롭게 눈에 띄기 시작한 가수들을 그에게 손꼽아 보여주며 가능성을 어필했다.


생각보다 온라인은 무서운 곳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생각한 건 뜻밖의 지점에서였다. 습관처럼 이직을 하던 내가 홍보대행사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미디어를 신뢰하지 못했던 나에게 새로운 방식의 홍보는 꽤나 충격적이었고, 홍보 필드에 있다고 해서 결국 내가 원하는 '진짜배기 글'을 쓸 수는 없음을 그리고 또 이렇게 내가 생각하던 사회적 기준과는 '멀어진' 일을 할 수밖에 없음에 서글퍼졌다.


아무 노래나 일단 틀어


이번 주 시작과 동시에 차트 1위에 진입한 노래 가사 도입부는 이렇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뭐가 문제야 Say Something"

아무 노래 일단 틀으라던 지코의 말은 생각보다 많은 걸 함축하고 있었다.


일단 먼저 요즘 사람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차트에 진입해 있는 아무 노래나 듣는다. 좋은지 안 좋은지도 모른 채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많이 듣는다고 하니까 이렇게 노래를 듣는다. (물론 그 차트가 맞을 수도 있다지만!)



결국 아무 노래나 틀어서 그런가, 분위기가 엄청나게, 소위 말해 겁나 싸해진 것이다. 결국 아무렇게 춤추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려고 우리는 '아무개'로 살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 아무렇게나 살기 싫다.


잘 살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하고, 더 잘 살겠다고 1년이라는 기간을 우리는 스스로 마련해두지 않았는가. 한 번 사는 인생 제대로 살고 싶은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유를 하나 꼽자면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량 때문이다. 나 같이 욕심 많은 사람들의 경우, 정보를 찾다가 인터넷 창이 너무 많이 켜져서 그걸 또 정리하는 데도 미련하게 시간을 쓸 정도니까 말이다.


정보가 가치 있기 위해서는 나에게 맞는 정보이자 신뢰할 만한 정보여야 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뉴스에 나오던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 같은데 대중들은 완벽하게 변했다. 신문 기자들을 기레기라 칭하고, 음악 어플의 TOP 100을 거르고 있다.


아무개로 살기 싫은 우리들에게


아무노래를 내놓은 지코는 ‘아무노래 챌린지’를 시작했다. 아무노래 도입부 짧은 부분에 맞춰 춤을 추는 것으로 따라 하기 쉬운 동작인 데다가 둘이서 함께 출 수 있는 재미있는 춤이다. 남편이 몇 번 같이 춰 보자고 했지만 집에서 어설프게 게임으로 춤추는 나는 뭔가 SNS에 올리긴 민망하다. 그저 사람들이 추는 걸 보면서 즐겁게 웃을 뿐.


우습게도 지코는 아무노래를 만들어 놓고선, 노래에 맞는 춤을 춰 보라고 나름의 권유(?)를 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 유명 연예인들은 하나둘씩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렇게 일반인들 사이에서 가히 신드롬으로 불리고 있었다. 


결국 우린 아무 노래나 듣기 싫고, 아무 춤이나 추기 싫은 게 사실이다. 조금 더 재미있고 따라 하기 쉽고, 함께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니까. 밀레니얼 세대가 취향 공동체라고 하듯, 우리는 이렇게 각자의 취향을 따로 또 같이 공유하고 만들어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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