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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Feb 11. 2020

내 동생도 글을 씁니다

가끔 저보다 잘 쓰는 것 같아 자격지심이 들기까지

때는 지난해 가을. 동생이 글을 썼다며 링크 하나를 보냈다. 처음 받은 링크 속 글은 그냥 그랬다. 분량을 보나 흐름을 보나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하나, 둘 글의 양이 늘어날 때마다 의외였다. 오? 어? 이러다가 결국 동생의 글을 보고 눈물을 터뜨렸다. 글 속에서 그녀는 나를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나, 둘 글의 양이 늘어날 때마다 단단한 흙을 뚫고 나온 글은 나무의 기둥이 되었고 여기서 잔가지가 뻗어나갔다. 곁가지에 맛깔난 열매가 자라면서 글은 몰라보게 성장해 이젠 울창한 나무가 될 준비를 끝마쳤다.


글도 행동도 닮아간다


딱 그때부터였던 게 맞다. 동생이 글을 쓰면서 놀란 난 글 쓰는 방법을 조금 바꿔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조바심이 들었다. 매일 똑같은 패턴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나를 독자들이 혹시나 권태로워할까 봐 무서워졌다. 매주 화요일 그리고 목요일마다 성실하게 쓰던 글 노동자는 열흘 주기로 한 편을 끙끙대며 쓰는 못난 노동자로 변신했다.


반대로 동생은 에디터로 활동하며 매주 월요일마다 한 편씩 글을 쓰고 있었다. 월요일 밤 열두 시까지 글을 써야 한다던 그녀는 화요일이 넘어가기 전까지 촌각을 다투며 글 한편을 완성했다. 완성도보다는 스토리라던 그녀의 글은 매번 기대 이상의 주제를 담고 있었다. 매주 '언니 무슨 글 써?'라고 글감을 물어보는 게 무색할 정도로 술술 재미있게 읽혔다.



사람들은 제각기 고유의 개성이 있다. 그 개성은 얼굴 표정을 만들고 행동거지를 만든다. 신기한 건 글도 행동을 닮는다는 것이다. (나를 닮아가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수업을 한 이유도 이와 같았다.)


아주 어릴 적부터 동생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나와 동생이 싸우면 나는 울면서 눈물을 닦기 바쁜데 반해 동생은 한번 울고 나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또박또박하는 편이었다. 매번 동생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은 꽤나 엄격했다. 자매의 난은 항상 동생의 승리로 끝나곤 했다. 대학생 때 까진 첫째라는 사실이 너무 싫었는데 그냥 이제 나를 만든 구성 요소려니 한다.


글에서도 동생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직설적이면서도 적확하게 글을 쓴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에둘러 표현하는 법이 없다. 동생의 글을 읽고 나면 알게 모르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건 아마도 그녀의 성격 덕분일 것이다.


너는 나를 이해하고 나는 너를 이해해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꼽자면 수강생이 쓴 글을 읽는 시간, 그리고 그 글에 대해 쓴 이유를 듣는 시간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이해하기를 시도하지 않았던 상대방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꽤나 보수적이고 딸들의 말을 듣지 않던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함께 백화점에 첫 방문을 했다는 수상생은 글을 통해 가족 간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내 동생의 소재 70프로는 바로 언니인 나였다. 그녀는 글을 쓰면서 결혼해 분가한 언니를 그리고 작가로 변신한 언니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구식이라 부른다. 쓰는 걸 좋아하고 메모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메모장을 피고 길거리 중간에 서서 메모를 하는 나를 상상하는 그녀에게 나는 구식이다.


충분히 대화를 해도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뇌리에 나의 어떤 모습이 박혀 있는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편의 짧은 글을 읽으면 쉽게 알 수 있다. 나의 어떤 점이 그녀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지 말이다.


갑작스러운 결혼과 동시에 나의 분가는 빠르게 진행됐다. 크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속에는 가시가 있었다. 언젠가 집에 들어갔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언니 하며 방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던 동생의 말을 듣고 집에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언제쯤 나는 너만큼 멋있어질 수 있을까


행운의 여신은 용기 있는 자의 편이라고 한다. 스무 살을 시작으로 동생은 매 해 새로운 것을 도전했다. 동생은 내가 대외활동도 열심히 하고 바쁘게 살았다고 하며 나의 도전을 추켜세우지만 그녀의 도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동생은 도전에 인생 모든 것을 걸었다. 본인의 시간과 땀 그리고 관계까지 모두 걸고 공부를 하고, 또 새로운 것도 시도했다.


결국 그녀는 그녀에게 맞는 재능을 찾았다. 약 3년의 도전과 방황 끝에 그녀에게 맞는 옷을 입었다. 한국무용으로 처음 입시를 보고 반년만에 편입에 성공했다. 몇 달 전에 발표회를 하던 날, 무대 위에 있는 동생을 보고 눈을 뗄 수 없었다. 고작 5분의 춤사위는 지난 5년 간의 땀방울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동생과 달리 나는 겁쟁이다. 모든 걸 포기하고 뛰어들지 못하는 사람이다. 겁이 많은 편이라 하나에 올인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 번도 말하지 못했지만 내 동생은 진짜 멋있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걸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그 걸음에 후회하지 않는 사람. 언제쯤 나는 너만큼 멋있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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