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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n 16. 2020

따뜻한 국밥같은 사람들

피로했던 하루가 싹 풀리는 느낌

일이 끝나고 친구와 배가 고파서 저녁을 먹으러 메뉴 선택권을 그녀에게 넘기자 망설임 없이 그녀는 “국.빱”이란다. 역시 꽉 막힌 속을 푸는 덴 더할나위 없는 한 끼인거다. 뚝배기가 내 앞에 턱 놓이면 바로 숟가락을 집어 국물을 맛본다.


“캬.”


시원하다며 속으로 되뇌이던 중 국밥 예찬 그녀는 또 말을 덧붙인다.


“미국에 국밥이 있었으면 조커가 탄생하지 않았을거래. 댓글보고 완전 이마 탁 쳤잖아.”


맞다 맞아. 국밥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다.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는 날에도, 에너지를 방전한 날에도, 국밥은 한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한다. 국물을 한 사발 먹으면 답답했던 속이 시원해지고, 건더기를 건져 먹으면 허하던 뱃속이 뜨뜻해진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체한 등을 쓸어 내려주는 엄마처럼 국밥은 딱 나에게 그런 친구다.


나가기도 귀찮고 몸도 지쳤어


이를 앙물고 버텨 내겠다 생각한지 딱 5개월. 그 때부터 들어오는대로 좋은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고 있느라 매일 한 쪽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내년에는 이렇게 서울과 인천 양쪽 끝을 찍지 않고 싶어서 발이 보이지 않게 다니다보니 에너지가 방전되는 건 당연했다. 유동적으로 일을 해서 그런건지 일주일에 쉬는 날은 평일 단 하루.


프리랜서에게는 평일보다 더 바쁜 주말이다. 금요일 아침부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나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며 마룻 바닥에 철푸덕 누워있었다. 점심을 준비하던 남편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힘들 때 여보 글 읽었더니 마음이 위로 되더라. 멋있다. 우리 작가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엉덩이를 토닥이며 일으키는 무서운 능력자. 샤워하러 들어가며 다시 또 두 손을 꽉 쥔다. 아직도 한참 멀었어. 마냥 나를 칭찬해주기엔 한참을 모자란 작가일 뿐.


말 안 듣는 아홉살 열살 꼬마들을 만나면 목청이 높아지고 눈썹이 위로 찡긋 올라간다. 책을 읽으며 수업 컨디션을 진단해본다. 오늘도 말 안듣겠구나 포기. 그러다가 꼬마들의 상처목록을 적어봤다. 진지하게 하나 둘씩 써 내려가던 두 꼬마는 코 끝이 찡한지 코를 쓰다듬는다. 뭐 때문일까. 친구의 상처 처방전을 그려내고 나서야 알게됐다. ‘많은 친구들 앞에서 날 무시해요. 외할아버지가 죽었어요.’ 처방전은 효력은 대단했다. ‘이 약을 먹으면, 힘이 쎄진다. 오빠가 보이지 않는다. 외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정말 피곤한 하루였던 거 같은데


수업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날에는 유독 긴장이 되서 그런걸까. 지하철만 타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수업 전에 그렇게 긴장되던 마음은 시작과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수강생의 눈빛과 함께 사르르 녹아버린다. 수업이라기보다 감응하는 대화 자리인 것 마냥 주저없이 속마음을 내보이는 그 자리에서 감탄해 마지않는다.


와야할 한 수강생이 삼십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연락이 온다. ‘제가 위치를 잘못 알았어요.’ 엄청 먼 거리임에도 그녀는 굳이 수업을 위해 다시 지하철에 오른다. 한 시간 후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는다.


수업이 끝나고 그녀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감정일기를 이 주 동안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됐더라는 너무 부정적이어서 긍정적으로 해야겠다는 깨달음까지. 어딘가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두 엄지 손가락을 지켜올리며 내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선사하는 그녀. 진심으로 내 팬이 됐다며 회사 동기에게 내 글을 보여줬다는 한마디로 답답했던 속이 뜨끈하게 풀리는 것 같다.


촛불하나 노래는 GOD의 노래라고 생각했건만 오늘만큼은 내 노래였다. 글이 써지지 않아서, 아이디어가 고갈되서, 상처를 자꾸 드러내게 되어서 잠깐 글에게 한 발자국 떨어져 있었는데 촛불하나가 뜨끈한 국밥을 들고 내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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