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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Oct 17. 2019

어쩌다 윤리를 공부하게 된 걸까

지독하게 재미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편견

사범대 졸업장은 꽤나 쓸모 있다. 먹고사는 데 있어 큰 지장 없이 여러 곳에 기회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교육학과를 졸업하면 나오는 정교사 2급 자격증은 나의 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서다. 종이 쪼가리 하나가 주는 위력 덕분에 어딜 가나 선생님, 강사님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과가 무슨 과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내 '아 재미없었겠다. 그 과에서는 뭐 배워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관심 있어 갔냐는 질문을 받노라면 '성적에 맞춰서 갔어. 운이 좋았어.'라며 솔직하게 대답해주고 싶지만 돌아올 그들의 답변이 두려워 말을 아낀다.


내가 도대체 왜, 윤리교육과에 들어갔는지 어떻게 윤리를 공부하게 됐는지 그럴싸한 답변을 찾다가 내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가장 첫 번째 이유론 뭐 당연지사 수능 점수가 잘 나왔기 때문이다. 다른 점수보다 윤리 점수가 잘 나왔다. 1등급. 수능 성적표에 1이라는 숫자는 딱 윤리 아래에만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교육과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취업이 어려웠고 나보다 딱 5살 많은 언니 오빠들이 취업을 고민하고 있는 걸 보면 아득하고 무서웠다.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보면 선생님이 돼 있을 것만 같다는 큰 착각을 했다. 지나친 오산이었다.


조금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데는 수많은 요소가 작용했는데, 그 요소들을 다 무시하고 본연의 나를 찾기 위해선 집중이 필요하다. 가끔 생각이 나지 않을 땐 일기장을 뒤척이는 습관이 나의 근원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호모소비엔스라고 한다만, 우리 집은 조금 예외입니다


다섯 살 전까지 우리 집은 가난했다. 가진 게 쥐뿔도 없는 신혼이었던 나의 부모님은 30년 동안 살던 고향을 등지고 먼 타지로 이사와 반지하 단칸방을 구했다.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서 시작한 그들은 이제 본인들이 중산층이라 말씀하신다.


“사위, 우린 아침마다 과일 3종류 챙겨 먹어.

“우리 딸 아기 때는 과일 하나도 못 사 먹었는데...

나의 부모님의 최대 사치는 매일 아침마다 과일을 깎아 먹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지금까지도 먹는 걸 좋아하고 식탐이 많던 나는 어릴 때도 변함없었다. 시장에 가면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떼를 썼고, 심지어 양 쪽 손에 먹을 게 있어도 또 다른 걸 원했다. 먹는 게 귀했던 그 시절에 그들은 시장 다녀올 때마다 칭얼대는 딸에게 혼을 냈다. 엄하게 화를 냈지만 정작 마음속으로는 다 해 주지 못해 속상했다고 이제야 말씀하신다. 그렇게 힘들었기에 나의 부모님은 정말 작은 것 하나에 감사하셨다.


영수증에 계산이 덜 돼 있으면 꼭 찾아가 더 계산하는 우리 엄마.


엄마에겐 그 흔한 명품 가방 하나가 없다. 결혼할 때는 돈 많이 벌어서 꼭 명품가방을 사 드리겠노라 결심했던 딸내미의 오래 전 다짐은 가진 것 하나 없이 결혼하는 그들과 똑같은 상황이 되어 버린 탓에 결국 다음 기회로 미뤘다. 나의 부모님께 소비는 익숙지 않은 것이다. 분명 넉넉한 살림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소비란 매우 생경한 것이었다.


대부분 인간은 가진 게 없는 사람보다 부유한 사람들에게 열광한다. 심지어 지금 현대인을 호모소비엔스(호모사피엔스+소비)라고 부를까. 그만큼 소비는 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지표다. 소비한 물건을 통해 나를 과시할 수 있으며 명품을 두르고 다니면 진짜 내가 명품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과연 사람의 가치를 숫자로 증명하는 게 쉬울까. 사람의 존재 가치는 숫자로 증명할 수 없지만 타인과 소통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숫자다. 그 흔한 차를 타고 다녀도 차의 금액대를 귀신같이 알아차리며 부러워하고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까 궁금해하는 우리들.


분명 수학을 좋아하던 엄마였지만 수학을 잘 알려주시지 않았다. (물론 엄마가 직접 과외를 해주시긴 했지만 내가 따라가지 못했던 것 같다.) 수학에 앞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시려 했던 것 같다. 세 발 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로 환승하기 위해 무릎이 깨지고 넘어지는 딸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었다. 그리고 다섯 살 어린아이였음에도 동네에 계시는 할머니들과 평상에 앉아 해가 지도록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렇게 내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대범함을 주셨다.


대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작은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대범한 사람이라 칭할 때 전제 조건이 또 있다. 나를 중심으로 사회의 주변인들에게 불편함을 끼쳐서도 안 된다. 즉, 예의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다.


재미없었을 것 같다는 그런 편견은 버려주세요


'Manners makes Man' 매너, 즉 예의가 사람을 만든다는 <킹스맨>의 대사 한 줄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것 같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매너 없는 사람들이 치이기 때문일까. 맑은 공기를 깊숙이 들어마시다 가끔 숨을 바투 뱉는다. 지나가던 행인 1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내 몸을 가까이 스쳤기 때문이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킹스맨>이 그냥 스파이 영화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윤리교육과를 나온 사람의 입장에서 잘 그려진 하나의 '윤리(도덕) 교재' 같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없애야 하는 스파이임에도 양복을 입고 젠틀한 주인공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일갈한다. 또 다른 한 마디는 내 마음을 후벼 팠다. '타인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한 것이어야 말로 진정으로 고귀한 것이다.'


대범한 사람인 나는 사람 냄새나는 걸 좋아한다. 수다가 없으면 하루가 힘들고 지치는 편이고, 미소가 부재했을 땐 마음의 배터리가 고갈된 느낌이랄까. 좋은 향기 나는 사람들만 머무르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막연하게 해 온 것 같다. 그래서 억울한 사람들이 없어지길 바랬고, 국제 변호사의 꿈을 키워 왔던 것도 같다. 가끔 아프리카에 있는 아이들이 밥을 못 먹어서 갈비뼈가 보이고, 어느덧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에 눈물이 났다. 그래서 처음엔 정치외교학과를 가고 싶었다.


우연히 가까운 곳에서 사회를 작게나마 변혁시키는 방법이 '윤리'일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자연스럽게 흘러 흘러 윤리를 공부하게 됐는데 결국 윤리는 하나의 관습이자 문화이고 사회를 살아가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살아가는 데 있어 조금 더 나은 방향의 전제조건이 필요하듯 우리 문화에 맞는 철학적인 사유가 필요할 때 윤리를 공부하게 되면 참 좋겠다.


말했잖소 사람의 가치란, 자신이 부여하는 것이라고. - 막심 고리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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