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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Oct 29. 2019

글이 밥 먹여주냐는 말

네, 그렇더라고요

회사를 박차고 나온 이유를 묻는 사람이 늘었다. 그럴 때마다 '작가 지망생입니다'라고 말한다.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건진 모르겠는데 그냥 글이 쓰고 싶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얘기를 궁금해할진 모르겠지만 두려움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하지 않게 되면 또 자책할 게 뻔했다.


호기롭게 글을 쓰던 어떤 날에 누군가의 질문 때문에 3일을 통째로 날려먹었다. 약 3초의 망설임과 동시에 그에게 대답하고 돌아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글이 밥 먹여주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 나 자신에 짜증이 밀려왔다.


밥 먹여 준다는 말


프리랜서가 된 우리 부부는 삼시 세끼 중에 두 끼를 집에서 먹는다. 아직까지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우리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반찬을 직접 해 먹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밥솥이 좀처럼 쉬는 날이 없었다. 한 포대 쌀이 바닥이 보일 때쯤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우리 벌써 엄마가 준 쌀 다 먹었다?”

"그거 양 엄청 많은데, 우리 집에 쌀 많은데 가져다 먹어. 근데 너네 밥을 얼마나 먹는 거야?”


쌀 독에 쌀이 똑 떨어졌어...


의식주에서 중앙에 위치한 식은 그만큼 삶의 중심축을 차지한다. 곧, 먹는 건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고전 문학 작품에서 쌀독에 쌀이 떨어지는 게 바닥이 드러나는 것 자체로 고되고 힘든 삶을 묘사하는 방법이었는데 우리 집에서도 생기는 일이라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문학 작품처럼 생존에 대해 절박하지는 않았다. 그저 물이 흘러 강으로 가고 바다로 가듯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보 프리랜서인 내게 아직 글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나를 찾아주는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할 뿐이다. 글로 나를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쉽게 나를 드러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나만의 비법'을 알려주고, 실제로 글이라는 게 내 삶에 어떤 작용을 도와주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노력을 해야만 쌀을 살 수 있는 돈이 나온다.


그 대신 글은 밥 먹을 수 있는 힘을 내게 줬다. 밥을 입에 대지도 못하던 나에게 억지로 밥 떠 먹여준 게 글이다.


생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다. 삶의 의지가 없는 나는 굳이 밥을 먹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표현하기를 갈구하는 내 안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곳은 흰색 종이 위였고, 거기에는 무엇이든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들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수 십장의 종이가 쌓이고 나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래서 플랫폼인 브런치 등단을 신청했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몇 차례의 도전 끝에 그들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글에는 소질이 없음을 자각하고 현실로 돌아오는 준비와 동시에 마크 트웨인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쓰고 읽고 쓰고 또 읽고, 시간이 없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가질 수는 있다. 수많은 종이를 낭비하지 않고 하나의 반짝이는 문단으로 표현해 내는 게 어려운 것이다.


그의 말처럼 무작정 쓰는 건 의미가 없었다. 세상에는 반짝이는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작가들처럼 유랑하는 단어를 잘 주워서 내 것으로 손질해 하나의 문장과 전체의 글로 구성해 내는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힘을 얻기 위해 소설과 수필, 철학책까지 재고 따지지 않고 책을 읽으며 영양분을 섭취했다. 점점 몸과 마음이 정상화의 궤도에 올라가면서 혼잣말 정도였던 내 글에 변곡점이 생겼고 상승 곡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매거진에 글을 올리게 됐다. 그래도 매일 들어와 들여다봐주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고 조금씩 구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들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글을 쓰는 데 큰 원동력이다. 내 이야기를 신뢰해준다는 것과 동시에 그들은 내 경험의 특수성을 인정해주고 있다. 반 세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기술에 열광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우린 제각각 경험한 게 다르다. 동일한 경험을 했더라도 보는 관점과 당시 감정에 따라 경험의 특수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바로 글로 밥 벌어먹고살 수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금의 공백기가 없었더라면 과연 프리랜서라는 경험의 특수성을 그냥 놓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잠깐 쉬어가는 시간은 앞에 있는 것보다 조금 더 멀리 있는 걸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순수하게 글 쓰는 게 좋은 글 바보는 오늘 하루도 글로 연명한다. 이렇게 한 편의 이야기를 다 쓰면 사유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걸어갈 수 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생기고 길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아이디어가 샘솟고 있음에 글은 예나 지금이나 나한테 밥 먹여주는 소중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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