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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Oct 31. 2019

문제집은 몇 권이나 풀어야 하나요

오답노트를 만든다고 다 맞으면 재미없잖아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뛸 듯이 기뻤다. 문제집을 더 이상 풀지 않아도 된다니. 그 지겨운 숫자를 볼 필요가 없고, 오지선다 문제를 풀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나를 제일 기쁘게 만들었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 발표가 날 때부터 문제집 뭉텅이를 뜯어서 소각장에 버릴 때 제일 짜릿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문제집은 끝이다. 안녕.'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책을 쌓아두고 계단을 내려가도 행복했잖아.


아주 큰 착각이자 오만이었다. 문제집 안에 있는 문제는 답이라도 있었지, 내 인생 문제에는 답안지가 없다.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내 선택을 후회해도 탓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예전에 문제집을 풀 때는 수능 특강 선생님도 있었고, 과목 담당 선생님 탓을 할 수도 있었다. 


불안해 죽겠어서 답안지 같은 자기계발서를 샀습니다


대중의 불안한 마음을 빙자해 사회에서는 멘토와 멘티가 성행했다. 더 나은 멘토를 찾아 기웃거리며 감탄을 마지않았을 때, 분명 나보다 앞서 경험해 본 사람들은 물론 모두 인생의 멘토가 맞다고 생각했다. 몇 년 뒤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진. 내가 바래서 찾아다녔을 때는 정말 멘토를 유달리 많이 만났다.


하지만, 멘토는 멘티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활동해야 맞다. 필요하지도 않을 때 멘토가 되는 건 바로 꼰대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거다.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좋은 말을 던진다고 해서 과연 제대로 기억이나 할까. 그냥 개가 짖나 보다 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생이던 그때는 그나마 오지선다를 쉽게 그릴 수 있었다. 확실한 전공과 학교. 인 서울에 있는 어느 평범한 여대에 다니면서 사범대생인 여자 사람. 대부분의 멘토들은 선생님을 추천하거나, 조금 더 내게 관심 있는 후자는 글을 잘 쓰니 기자가 돼 보는 건 어떠냐 말했다.


이미 만들어진 답을 체크하면 되는 것처럼, 인생도 그러면 된다고. 멘토들은 말했다.


이미 만들어진 답을 체크하면 되는 것처럼, 인생도 그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점에 가면 자기계발서를 닥치는 대로 집어 들었다. 예전에 사 두었던 자기 계발서를 중고 서점으로 팔면서 얼굴을 꽤나 붉혔던 기억이 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위기를 경영하라' '미쳐야 청춘이다'


뭘 그렇게 미쳐야 했는지. 그들만큼 내가 미쳐야만 하는 건지. 미쳐야 사는 대한민국의 어느 청년은 이제 미칠만한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피로감을 주는 그 자기계발서를 내 손에서 놓아주어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정말 어떤 고민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지는 몰랐다. 나를 위한 정답을 선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내 인식과 상황이었다. 실제로 나라는 사람은 다채로운 경험을 토대로 가치관을 정립했으며 그에 따라 다른 관점이 만들어졌을 거다. 나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파악할 수 있을 테지만, 그게 아닌 사람들은 그저 동정이나 측은일 수밖에 없다.


문제집이 몇 권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고등학생 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충분히 원리를 아는 모범생은 문제집을 많이 풀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외우는 게 쉬웠던 나 같은 학생은 원리를 잘 아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허튼 돈을 쓰지 않아도 되고, 무식하게 문제를 풀면서 진 빼지 않아도 되니까.


문제의 개수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여전히 변한 게 없는 걸 보면 난 참 고지식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똑같은 문제를 풀고, 몇 번 틀려서 오답 노트를 만들었는데도 난감하게 또 틀리고 앉았다.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 나 자신이 싫어졌다. 결국 거듭되던 도전은 전기가 나가는 것처럼 딱 끊어져버린다.


얼마나 문제집을 사야 할지 책을 읽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누군진 알았으니 됐다.


나의 진가는 내가 알아봐 줄 때 발현될 수 있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아모르파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결말은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는 박웅현 작가의 말처럼. 내 진가는 나의 뿌리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뿌리가 단단해지는 데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한데, 땅을 고정시키는 데 영향을 주는 건 비바람과 역경이다. 지나온 시간의 도전과 실패에서 온다는 거다. 결국 나는 또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풀고 싶은 문제가 있어서 분명 똑같은 문제를 풀 것이다. 무식하더라도 내가 지금 하던 도전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만 시간을 들여 천천히 나를 바라보기로 했다. 원리를 잘 알고 나서 또 문제를 풀어보기로 했다. 또 실패하더라도 별 수 있나. 그게 나 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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